지난 주간에 세 통의 성탄 카드를 받았습니다. 카드를 받아드니 한 해가 다 지나갔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세 통의 카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첫째 카드는 어느 기관의 장이 보낸 것입니다. 한 단체의 책임자로서 관계된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내어 인사를 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카드에서 별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그같은 ‘공식적인’ 카드를 보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만, 제가 별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일을 굳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의미가 없어 보이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저의 약점인 줄 알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두번째 카드는 뉴저지에서 알게 된 친구 호세 로페즈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는 라티노 아메리칸으로서 미술 교사로 일하다가 은퇴했습니다. 교사로서 그는 목사 안수도 받았는데,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라티노 미쎤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목사가 된 동기가 특별합니다. 그는 책을 읽지 않으려는 어린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만화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싶은데, 그러러면 신학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를 하고, 내친 김에 목사 안수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그동안 두 권의 만화 성경책을 출판했는데, 저에게 두 권이 다 있습니다.

그는 매 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성탄절 카드를 보내는 것을 습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를 만나 안 후 지금까지 8년 동안 한 번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모셨던 목사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분은 매 년 11월 말이 되면 아는 분들에게 성탄 카드를 보냅니다. ‘가장 먼저 받는 카드가 가장 오래 기억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호세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배울만한 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저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카드는 어느 교우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봉투에도, 카드 속에도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교우 중 한 사람이라고만 쓰여 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감이 잡히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받은 카드에 대해 답장을 해 왔습니다. 그 교우께서는 이것을 생각하고, 제가 답장을 쓰는 수고를 하지 않도록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콧날이 찡합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 배려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하지만 답장을 쓰는 동안 제가 느끼는 기쁨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탄 카드를 주고 받는 것이 불필요한 소비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거기에도 일리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담은 말 한 마디가 주는 감동과 기쁨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있는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올 해에도 성탄 카드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미리 크리스마스! (2010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