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행가에는 섬이 많이 등장한다. “섬마을 선생님” 그리고 “흑산도 아가씨...”(가사: 애타도록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 보다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그 가사 내용이 너무도 애절하다. 섬 사람들은 육지에 가서 사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육지 사람보다 그 마음에 한가지 한을 더 가지고 살고 있다. 현재 북한과 가까이 인접한 서해 5개의 섬에는 해병대원들이 진치고 있다. 그곳 주민들은 또 다른 한이 있는 것 같다. 총을 맞대고 있는 전쟁의 위기 속에 살고 있었기에 전쟁 없이 마음껏 고기잡이를 할 수 만 있다면‥ 하는 평화에 대한 한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 또 북으로부터 연평도가 포격을 받았다. 전쟁의 명분을 북에서 먼저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이 두려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남한의 입장에서는 전면전이 터지면 6.25 이후에 피땀으로 이루어 놓은 경제·사회적 부를 잃어 버릴까봐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 반면, 북한은 정국 불안으로 이어진 3대 세습과 아사자들이 속출하는 경제적 위기로 말미암아 전쟁이 터져도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놈에게는 당할 수가 없다. 남한과 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미국만 없다면 불장난을 칠 수도 있는 그런 북한이다. 쉽게 처신하지 못하고 있는 남한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적인 각도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한국이 경제대국의 진입 초기에 이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다. G20에서 자신감 넘치던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 사건으로 육군 본부 지휘관 모임에 참석했을 때 신문에 실린 사진 속의 모습은 사색과 긴장 그 자체였다. 잘 나가는 경제 부강의 나라에 엉덩이에 뿔나고 대화도 안 되는 못난 형제를 두어서 왜 늘 긴장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할 때는 이웃나라들을 통해서였다. 한국이 경제적인 강국은 되었으나 자살률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1위이다. 물질주의의 화려함 속에 하나님을 떠난 사회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영적으로 더 겸손하라고 허락한 북한이 아닌가(?) 싶다.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자신의 육체에 있는 가시를 뽑아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했으나 하나님은 빼주시지 않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 그냥 가시 가지고 살라고 했다. 우리는 잘 될수록 겸손하고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시의 역할이다. 가능한 한 전면전은 없어야 한다. 동족상쟁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북한으로 인해 남한이 영적으로 각성한다면 복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함께 살게 한 가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