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추수감사절은 Thanksgiving’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왜 한국말은 감사절이지만 영어로는 ‘Thanks-giving’이란 두 단어의 복합 용어인가? 혹시 그것은 ‘드림’이 함께하지 않으면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없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교회에 나가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감사’ 자체도 대상이 있어야 함을 깨닫기에 ‘Thank you, God’하는 것처럼 ‘Thank you’ 도 ‘giving’ 과 함께하는 것이 실과 바늘이 함께함과 같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추수감사절은 죄악 가운데 영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 믿음을 갖게 되어 영생을 누리게 된 데에 감사를 표시 할 수 있는 계기이며, 미국 땅에 정착한 한인들에게는 또한 무수히 많은 이민자들이 이민 초기 어려웠던 시절을 교회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함께 삶을 정착해 나갔던 유일한 곳임을 기억하는 때이다.

많은 이민 교회들이 추수감사절을 기해 이웃돕기와 나눔 행사들을 갖고 있다. 나 역시 70년대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나가게 된 사람 중 한 명이다. 자연스럽게 감사절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교회 행사를 통해 나눔을 실천해 왔다. 그 마음 가운데에는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컴패션은 1952년 6.25전쟁으로 춥고 어려웠던 한국에 미군들을 위한 집회를 인도하러 왔던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한국의 고아와 어린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스완슨 목사의 마음 한가운데에 ‘너는 이것을 보았는데 이제 무엇을 하겠느냐?’의 하나님의 음성을 들렸던 것이다. 그 후 컴패션은 41년 동안 10만 명 이상의 한국 어린이들을 양육하면서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왔고 1993년에 철수, 십 년 만인 2003년에 후원국으로 돌아왔다. 이전에 컴패션의 후원을 받았던 한국의 어린이들이 각처에서 리더로 성장하여 국제 컴패션에게 한국이 수혜국가가 아닌 은혜를 돌려 줄 수 있는 후원국가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한 결과였다. 훗날 천국에 갔을 때, 예수님과 자신을 도와준 후원자를 만나 단순히 감사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사를 Giving으로 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가끔 컴패션 현지를 돌아보며 컴패션 양육의 결과로 대학까지 졸업, 그 지역의 실질적인 리더가 된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 이들은 형제자매들 중에서, 혹은 그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학까지 나온 경우들이다. 이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다른 이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컴패션을 통해 그리고 후원자를 통해 배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가족과 다른 이에게 희망을 전해 주며 지역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대를 잇는 끈질긴 가난과의 싸움에 실제로 다른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것이 어려운 학생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도한다. ‘나도 후원자가 되어 그 마음을 느껴 보고 싶다’고.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미국에서 대공항이라는 자신들의 어려움을 돌보지 않고 한국 어린이들을 돌봤던 미국 후원자들이 있다. 그리고 미국으로 오게 하셔서 영생과 더불어 현세의 삶까지 정착시켜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 한국이 그리고 미주 한인들이 뿌리 내릴 수 있었던 은혜를 생각하며 이번 추수 감사절을 맞이해 ‘Giving’에 동참함으로 진정한 ‘Thanksgiving’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통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