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중앙연합감리교회(담임 황승일 목사)는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세상풍파의 거친 바람에도 4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황승일 목사는 “원수 대적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구원은 오직 여호와 하니님께 있다”며 “그분을 의지하여 믿음의 시련을 극복하라”고 권면했다.

<본문: 시편 3편>

시편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시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고 있는 고통을 열거하며 탄식하는 탄식의 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탄식의 내용입니다. 대게 시편 1, 2편을 두개의 서론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서론을 통해 시편 전체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탄식하는 시라고 할지라도 복 있는 사람의 시각,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됩니다.

세상에는 탄식할 일이 많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일도 많습니다. 1절...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그리 많은지요 합니다. 살다보면 여러 사람 만납니다. 그 만나는 사람마다 여러 관계를 맺고 살지만 누구든지 변해서 나의 대적이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부모가, 자녀가 원수요 대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 맘이 편하지 않아서입니다. 나의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눈을 가지고 보면 대적이 많습니다. 또한 아무 이유없이 나를 음해하거나 대적하기도 합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치러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본문처럼 탄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나를 대적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사람들의 말이 더 무섭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는 말처럼 무서운 말이 없습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 같다고 하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을까요?

그러나 시편에서 다윗은 이러한 탄식과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3절에 나오듯이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대적하는 자 많고 그 가운데 두렵고 외롭지만 하나님 계시며, 그 하나님 한분으로 넉넉하다고 고백합니다.

밖에서 놀던 아이가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가 대답하면 밖에서 계속 놀 수 있지만 엄마의 응답이 없으면 불안해서 놀지 못합니다. 엄마를 찾게 됩니다. 우리가 의지할 이는 여호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대적이 일어나 나를 치러 올라와도 거룩한 산에서 기도를 응답하시고 들어주십니다.(4절)

본문의 6절부터 보십시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께서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안인의 이를 꺾으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나 혼자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은 나 혼자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알리고 함께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라고 했습니다. 나 혼자 누릴 복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사랑하십니다. 심지어 내 대적 원수까지도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여호와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알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