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이민교회에 남편과 사별하고 두 딸을 키우는 50대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3년간 심한 정신병으로 학교도 중단하고 있는 18세의 딸을 위해 목회자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목회자는 그녀의 딸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안했으나 그 부인은 이 제의를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딸이 발작증상을 보일 때는 새벽 2~3시에도 심방을 요청하는 전화를 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가정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이 부인을 설득시켜서 교회 공동체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로 기도를 열심히 하는 권사들은 새벽기도, 금요 철야 등을 통해 기도모임을 주관했고, 젊은 집사들은 편을 짜서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대기조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어느 성도가 주선하여 정신과 의사와 전문상담사로부터 정신과 치료와 상담치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또 이 가정의 생계를 위해 건축 일을 하는 성도가 그 가정의 수리를 담당해주었습니다. 여선교회 집사들은 가사 일을 도왔고, 차편도 제공해주었습니다.

젊은 여전도사는 환자의 말벗이 되어주고 환자를 밖으로 유도하여 쇼핑도 시키면서 기분을 전환시켜주었습니다. 결국 이 소녀는 잘 회복되어 정상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위기를 만난 가정이 있을 때 신앙공동체가 모두 힘을 합하여 기도해주고, 적극 도와주면 상처를 딛고 일어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기도해주고, 치유공동체가 되어주면, 고통중에 있는 가정들이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받을 수 없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각한 가정 문제로 이혼까지 거론하고 있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전문상담자가 그들을 돕지 못했으나, 같은 교회의 두 커플이 함께 정규적으로 이 부부를 만나서 4개월동안 성경 공부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지속적인 돌봄과 권면을 제공한 결과, 결국 그 가정이 잘 회복된 사례도 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휴가를 갈 때 이웃의 ‘아버지를 잃은 아이’를 함께 데리고 간답니다. 명절이 되면 꼭 그 가족을 초대하구요. 다음은 어느 성도의 어릴 적 회상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를 앓고 있던 15살 때, 그 믿음의 공동체가 우리 일을 도우러 찾아왔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직후, 우리 집 우물이 얼어붙었다. 우리집은 수리공을 부를 돈마저 없었다. 그 때 우리 교회 한 분이 매일 20갤론의 물을 가지고 10마일을 달려 우리집에 오셨다. 다음 해 봄,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나의 마음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가슴 찢어지는 일이 있은 지 몇 주 후 토요일, 다른 한 장로님이 나를 낚시에 데려가시겠다고 오셨다. 여름 내내 장로님은 토요일마다 오셔서 낚시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주셨다. 나는 그가 정말로 사랑을 품고 나의 분노와 고통과 혼란스러운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위스콘신 주의 호수로 나를 데려갔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들은 심리학자도, 목사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두 명의 평신도, 목장주와 철도 차량 전환 조수였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치유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며,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