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던 한 제자가, 부친의 장사를 위하여, 잠시 예수님 곁을 떠나 있기를 요청하는 말씀이 복음서 두 곳에 기록되어 있다 (마 8:21-22, 눅 9:59-60). 마태복음 8장 21절에는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기록되었다. 이에 예수님은 냉정하게 생각될 만큼 이렇게 대답하셨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제자는 자신의 부친 장례를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라’는 복수로 대답하시며,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포함시키셨다.

그동안 예수님의 이 대답은 해석하기 난해한 말씀으로 생각해 왔다. 일부 비평학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십계명 가운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을 무시하는 말씀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Fitzmyer와 Liefeld 같은 일부 주석학자들은 해석하기를, 먼저 언급된 죽은 자들이란 영적으로 죽은 자를 가리키며, 나중에 언급된 죽은 자들은 육신적으로 죽은 자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본문의 배경과 1세기 당시 유대인의 장례 절차에 비추어 볼 때 옳은 것은 아니다.

▲1991년 감람산에 위치한 히브리 대학의 전망대 공사 중에 발견된 1세기 당시의 유대인 가족 무덤이다. 고대 무덤이 발견되므로 공사는 중단되었고, 이스라엘 고고학 협회의 S. Weksler-Bdolah의 책임하에 발굴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바위를 파서 만든 전형적인 유대인 가족 무덤이다.
일반적인 해석의 실수
Byron McCane는 본문을 해석하는데, 세가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였다. 첫째는, 위의 해석은 본문에 기록된 제자의 요청에 적합한 해석이 아니란 것이다. 마태복음 8장 21절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는 제자의 요청을, 죽은 부친을 장사해야만 하는 아들의 도의적 책임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헌신 사이에서 나온 제자의 갈등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해석은 본문의 ‘내가 먼저’ 라는 말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라는 말을 예수님을 따르는 일과 부친을 장사하는 일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하는가’ 라는 일의 우선 수위로 생각했기 때문에 비롯된 해석이다. 그러나 제자는 부친을 장사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예수님께 요구한 것이다. 제자의 요청대로라면, 그는 일정한 기간을 채운 후에 돌아올 것이고 그리고 예수님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해석에는 제자가 요청한 시간의 설명이 없다.

두 번째,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 이란 부분을 간과하였다.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언급된 앞서 죽은 자들과 나중에 죽은 자들을 서로 다르게 구분하였다. 그것을 간단하게 영적으로 죽은 자와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이란 말로 해석해 버렸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그들의 죽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들의 죽은 자들’이란 이미 죽어 가족 무덤에 안장된 자들의 친족 관계나 동일한 상관 관계에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지, 영적이나 육체적인 죽음을 구분하기 위한 표현이 아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죽음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두 죽은 자들 모두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을 말한다.

세 번째 일반적인 해석의 실수는, 1세기 당시 유대인의 장례 절차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았다. 1세기 유대 장례 법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은 것이 확실하면, 즉시 시신을 가족 무덤으로 옮겨 장사를 지냈다. 장사 기간을 하루 이상 넘기는 일은 없다. 지금도 유대인들의 장사는 죽은 당일, 또는 장사 지낼 수 없는 밤에 사망했으면, 다음날 장사를 지낸다. 결코 두 밤을 넘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명기 21장 22, 23절의 모세의 율법에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시신을 즉시 장사한 예는 성경 몇 군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의 경우 (요 19:31)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 (행 5:6-10)이다.

예수님의 한 제자가 부친의 죽음 소식을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었다면, 그가 돌아갈 즈음에는 이미 부친의 장사를 끝났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장사를 지낸다. 그 이유는 죽은 자의 시신을 오래 두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종교적 의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1세기 당시 유대 사회의 장례 절차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해석은 이런 유대 장례 관습에 주목하지 않았다.

1세기 유대 장례 절차에 따른 본문 해석
▲1990년 Zvi Greenhut이 발굴한 가야바의 석골함 (ossuary)이다. 예루살렘 옛 성 (Old Jerusalem) 의 남쪽에서 발견되었다. 석골함에는 아람어로 가야바의 아들 요셉 (Joseph, son of Caiaphas)이란 이름이 쓰여있다.
가족은 가족 중의 누군가 죽으면, 시신을 즉시 무덤으로 옮겨, 세마포로 싼 후에 가족 무덤에 안장한다. 땅을 파서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위를 파서 만든 바위 무덤 안에 시신을 안장하는 것이다 (유대인의 무덤 구조는 다음 기회에 소개한다). 그리고 가족은 죽은 자를 기억(이즈코르/ izkor)하며 일주일을 애도 중에 보낸다. 이 애도의 일주일을 쉬브아(shiv'ah)라고 부른다. 가족은 7일을 슬퍼하며 지내지만, 그렇다고 장례가 끝난 것은 아니다. 상을 당한 가족은 한 달간 공적인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 한 달 중에 유대인의 중요한 명절이 있을지라도 회당이나 성전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은 죽은 자가 1년이 되는 날에 다시 무덤을 찾는다. 그러면 죽은 자의 육체는 모두 썩어 뼈만 남게 되는데, 가족은 죽은 자의 뼈를 돌로 만든 석골함 (Ossuary)에 담는다.

석골함의 크기는, 너비가 두개골보다 넓고, 길이는 장단지 뼈보다 긴 석골함으로 죽은 자의 뼈가 다 들어갈 정도의 크기이다. 석골함에는 죽은 자의 이름을 새겨 넣기도 한다. 가족은 뼈가 담긴 석골함을 가족 무덤 안에 놓아두고 무덤을 떠난다. 그때서야 비로서 살아 있는 가족은 죽은 자를 위한 장례의 모든 의무를 이행한 것이다. 예루살렘 탈무드에 기록된 유대인의 장례 내용을 인용한다.

시신에서 육체가 모두 썩으면, 뼈를 모아 석골함 (Ossuary)에 담는다. 뼈를 석골함에 담는 날은 슬픔에 잠겨 있지만 그러나 다음날은 기뻐한다. 기뻐하는 이유는 죽은 자가 율법을 지켜야 하는 모든 의무로부터 놓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Moed Qatan 1:5).

죽은 자를 위한 장례의 마지막 절차는 죽은 지 1년이 되는 때, 뼈를 모아 석골함에 담는 의식이다. 이 장례 절차를 ossilegium 또는 두 번째 장사 (secondary burial)라 부른다.

예수님의 한 제자는 이런 유대인의 장례 관습에 따라 장사 지낸 당일부터 두 번째 장사가 있기 전까지의 필요한 시간을 요청한 것이다. 짧게는 몇 일에서 길게는 10개월이나 걸리는 긴 시간이다. 예수님은 제자의 이런 요청을 잘 알고 계셨다. 사실 제자의 죽은 부친의 하루 장사는 사망한 그날, 즉시 끝났다. 제자가 염려한 것은 죽은 부친의 당일 장사가 아니었다. 유대인의 가족 무덤은 한 사람을 위한 일인 무덤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 또 대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바위를 파서 만든 가족 무덤이다. 이미 소개한 장례 절차에 따라 무덤에 안장되어 썩어가는 시신도 있을 것이고 뼈만 남아 석골함에 담겨진 이미 죽은 지 오래된 가족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배경에서 풍유적으로 제자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랍비 문헌에 따르면, 육체가 뼈로부터 부패되어가는 것을 죽은 자의 죄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장례의 마지막 단계인 뼈를 석골함에 담는 ossilegium 의식을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예수님은 이런 유대인의 잘못된 장례 제도를 보신 것이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해 지는 것이지 다른 어떤 방법, 곧 육체가 썩어져 가는 과정을 통해서나 기타 여타의 방법을 통해서 사해지는 것이 아니다 (히 9:22, 26, 행 4:12, 엡 2:8-9).

결론
부친의 장사를 요청했던 제자의 물음과 예수님의 대답 잘하셨음을, 유대인의 장례 문화와 성경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보라. 너는 죽은 네 부친을 즉시 무덤에 안장했던 것으로 부친에 대한 모든 의무를 다 행하였다. 이제 너는 네 부친의 육체가 다 썩기를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것으로 모세의 율법 준수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죄가 사해지는 것도 아니다. 너는 이미 죽은 부친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다 행하였으니,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네 죽은 조상들이 네 죽은 부친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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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멤피스장로교회)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