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없이 백 년을 사느니 열정 있게 하루를 살 거에요.”

‘애틀랜타의 박칼린’으로 입 소문이 자자한 그레이스보컬스튜디오 김혜은 집사를 만났다. 아담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의 카리스마는 울긋불긋 물든 가을 단풍보다 더 짙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믿음으로 일구는 삶의 터전]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여느 비즈니스와 달리 흔쾌히 ‘대 환영입니다’라고 밝힌 김혜은 집사의 보컬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는 막 레슨을 마친 오후였다. 작은 방 하나에 꽉 들어찬 건반과 녹음기, 4개의 스피커 그리고 전신거울까지. 음악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예수님 오늘 밤에 오신다면, 그때까지 노래 할 거에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살아온 김혜은 집사는 작곡과를 지망해 공부하던 고등학생 때 엘에이로 이민 왔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드린 세가지 서원이 ‘신학을 하겠다, 찬양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겠다, 선교하겠다’는 것이었다. 바이올라신학교에서 서원대로 신학을 마치고 한 교회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던 20대 시절, 매주 사역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는 김혜은 집사.

“교육전도사 사역이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죠. 제가 너무 사역에 힘들어 하니 어느 날 담임목사님 사모님께서 물어 보셨어요. ‘만일 오늘 저녁에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그 때까지 김혜은 전도사는 뭐하고 싶어요?’ 그 질문을 듣고는 하루 종일 생각한 끝에 ‘사모님, 저는 예수님 오시기 전까지 노래하고 싶어요’, ‘그래? 그럼 김 전도사는 교육전도사가 안 맞는 거야.’ 정말 명쾌한 답이었어요. 그래서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usician’s Institute)에 입학했어요. 입학도 기적이었죠.”

교회 안에서만 자라 ‘온실 속의 꽃처럼’ 자란 김혜은 집사에게 전문적 가수를 양성하는 학교에서의 학업이 쉽지 않았다. 어느 한날, 오픈 클래스에서 무대에서 찬양을 불렀다가 지도교수의 퇴짜로 반복하기를 몇 번, 한 남학생 옆에 앉아서도 부르고 그 학생 무릎 위에 앉아서도 불렀지만 1시간 내내 퇴짜만 맞은 그녀. 지도교수는 ‘너의 노래에는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후 빈 교실에서 3시간을 펑펑 울고 난 이후 김혜은 집사는 ‘노래에 실어 내 마음을 전하는 법’을 터득했다.

너 나에게 약속한 것 잊었느냐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노래할까?’라는 생각만 들고 구체적인 건 나오지 않았어요. 이런 저런 기획사에서 러브콜이 와서 한국에 가서 가수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됐고요. 제 생각에 가수로 대박나면 연말 시상식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제 나름의 최선의 방법이었거든요. 결국 노래 포기하고 직장에 들어가서 일하다가 결혼했고,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평범하게 살았어요. 어느 날 새벽 부흥회 때 기도하는데 한마디 들렸죠. ‘너 나에게 약속한 것 잊었느냐?’.”

김혜은 집사는 이 부르심에 다시 순종해 사비를 들여 CCM앨범을 제작했다. ‘now I know’. 앨범제작을 마음먹자 여기 저기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알게 되고 작업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게 됐다. 1만장이 모두 팔리고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할 즈음, 가정의 불화가 불거졌다. 신앙인이었지만 찬양사역을 이해하지 못했던 남편은 결국 이혼장을 내밀었고, 한참 사역에 불이 붙던 시기 갑작스레 이혼하게 돼 모든 사역을 접고 ‘잠수’를 탔다. 사역자로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이상 더는 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역을 접고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엘에이에서 뉴욕까지 횡단한 이후 거기서 공부나 더 해야겠다 생각하고 준비하다가 난소 물혹이 발견 돼 수술했는데, 잘못되는 바람에 내출혈로 죽다가 살아났어요. ‘이제 날 데려가시려나, 하나님 왜 이러세요’ 이럴 정도로 사경을 헤맸죠. 얼마 후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기적같이 아이가 생겼는데, 뜻이 있어 주신 아이 같아요. 뉴욕에 있다 동생이 애틀랜타로 와서 사업하는 걸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큰 꿈을 품고 내려왔지만 잘 안되서 또 세상 일을 하다가 결국에 다시 이 자리로 부르셨어요.”

찬양의 제사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
▲리빙워러 찬양집회 연습 당시 뮤직디렉터로 섬긴 김혜은 집사는 이를 통해 애틀랜타 지역 청소년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 사이에서 '애틀랜타의 박칼린'으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열왕기하 말씀을 통해 지난 23년의 찬양사역과 달리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방법’으로 새로운 사역을 열어나가라는 약속을 받고 지난 5월 문을 연 ‘그레이스 보컬 스튜디오’에는 10-20대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노래를 하려면 가사를 해석해서 자기 걸로 만들어야 되요. 그걸 잡아주는 게 레슨인데 그러자면 그 학생이 처한 상황, 고민, 부모님과 관계를 알아야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목회 아닌 목회를 하고 있어요. 또 청소년들은 한창 식욕이 왕성하잖아요. 그래서 한달 레슨비 받아서 거의 그만큼 먹이다 보니 한번은 한 학생이 ‘선생님, 저는 이제 레슨비 말고 사역비를 드릴게요’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가장 큰 기쁨은 교회에 나가지 않던 학생들이 처음엔 가요를 배우겠다고 시작했다가 같은 학교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 친구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되는 거에요. 한번은 노래 부를 기회를 갖겠다고 교회 보내겠다고 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이게 바로 사역의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김혜은 집사는 애틀랜타 한어권 청년들의 연합집회는 리빙워러 찬양집회의 뮤직디렉터를 맡아 때로는 매섭게 때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이끌어 그 어느 때보다 찬양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때 지도 받은 청년, 청소년들 사이에서 소셜네트워킹을 통해 알려지고, 레슨을 받는 학생들까지 포함해 지역 내에 70-80%의 청소년들을 알게 됐다. 김혜은 집사는 이런 네트워킹으로 ‘음악’을 공통분모 삼아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보컬 스튜디오를 열 때 주신 비전인 ‘찬양의 제사를 통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힘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레이스 보컬 스튜디오’에서는 CCM 사역, 워십 훈련, 개인 레슨, 그룹 레슨, 찬양팀 트레이닝, 보컬 세미나, 보컬 디렉팅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교회 찬양팀 앨범 제작, 기념 앨범 제작, 상업광고 제작, CCM 사역자 발굴 및 제자양성이 이뤄지고 있다. 문의 404-643-2511 장소 2855 Rolling Pin Ln. 2nd Fl., Suwanee GA 3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