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다른 주에서 목회하고 있는 C 목사입니다. 수년 전에 교회를 개척해서 어느 정도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그 동안 상가 2층을 빌려서 주일 한번 예배를 드렸는데, rent fee나 사용료가 만만치 않아서 교인들과 의논한 후, 교회를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교회 건축 위원회를 만들고, 땅을 사는 문제, 건축 업자를 선정하는 문제, 융자를 받는 문제, 건축비를 충당하는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런 일에 거의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처리하고 결정해야 할 때마다 고민이 되고 밤잠을 못 이루는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도, 교회 집사님 중에 이런 일에 능숙한 분이 계셔서 자연히 그 분과 많이 의논하게 되었고, 그 분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H 집사님도 자진해서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도와주시는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문제는 건축 후에 일어났습니다. 교회 건물을 짓고 준공을 하고, 입당 예배를 드리는 날, 저는 이 건물이 생기기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예배 중에 H 집사님을 포함해서 그 동안 물심양면으로 수고해 주신 분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그 다음 주부터 H 집사님이 교회에서 보이지 않고, 뒤에서 저의 흉을 보고 험담을 하고 다니더니, 결국 저를 내 보내자고 모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성도들이 H 집사의 권모술수에 가담 되어 저는 그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 했는데, 도대체 이게 웬일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으며, 오갈 곳 없이 가족과 함께 하루 아침에 섬기던 교회에서 쫓겨난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사님,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목사님. 다른 주에서 목사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교회를 시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장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 없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그 일을 잘 감당해 주시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고 건축하고 입당 예배까지 드린 시점에서 목사님께서 어려움을 겪게 되셨다니, 무슨 말로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입당 예배를 드리는 날, 그 곳에 모인 모든 분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리기를 원하셨다는 젓, 같은 목회자로 충분히 이해가 가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지요. 그런데, 그 동안 가장 많이 수고하고 애쓴 H 집사가 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얼마나 당황이 되셨겠습니까? 더욱이 그 이후로 다른 성도들과 가세하여 ‘목사 내몰기 작전’ 으로 들어 갔다니, 그 동안 믿고 함께 의논해 왔던 H 집사에 대해서 얼마나 실망하셨겠습니까?

우리는 가끔 교회 행사들을 보곤 합니다. 장로 장립, 권사 취임, 목사 위임, 교회 입당 예배 등등. 그런데, 그 곳에서 예배 순서를 맡은 분들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기보다는, 그 당사자들을 칭찬하고 ‘서로 올려주기’에 분주한 것을 목격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간 곳 없고, 사람들의 잔치로 전락되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웬지 서글픔과 쓸쓸함이 밀려 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교회의 좋은 일에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그 분의 이름을 존귀하게 올려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 바쁜 시간을 내고 물질을 드려서 애쓰고 봉사했던 H 집사님과 같은 헌신자들을 입당 예배에서 거론하며 공적으로 감사 표시를 하지 않을 때, 그 분들은 깊은 허탈감과 실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 앞에 내 보이기 위해서 수고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고, 기도하면서 교회 건축이 은혜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랐다고 하더라도, 입당 예배 중에 목사님이나 장로님의 말씀 한 두 마디가 그 동안 그 분들의 모든 수고와 땀을 씻겨 주는 청량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H 집사님은 그 섭섭함을 견디지 못해서 다음 주부터 교회를 나오지 않았고, 목사님께서 이것을 미쳐 간파하고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일은 눈덩이처럼 번져 목사님을 더 깊은 곤경에 빠뜨린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는 너무 하나님만 생각하다 보니, 사람들의 현재의 감정과 필요에 대해서 둔감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고,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나 목회자 문제는 늘 작은 것에서 발생합니다. 더욱이 그것은 설교가 비성경적이거나 비신학적이어서가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것이 우리 목회자들에게 큰 숙제이면서,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목회자들에게 주신 고유한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곳에서 성도의 영혼과 함께 마음을 돌보시는 좋은 목사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