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청년들이 대단한 재능과 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형편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리고 무의미하게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같이 사는 모습을 볼 때가 자주 있다. 그들은 말로는 꿈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그것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자신감 없이 좌절감에 사로잡혀 살 때가 많이 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는데 그 이유의 대부분은 그들이 현실에 충실하지 못한데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언젠가는 나도 좋은 일을 하며 살거야라고 말을 하지만 지금은 시간을 무료하게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보람없는 삶 속에서 모든 것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스턴 칼리지의 사회학 교수인 Tony Campolo는 최근에 쓴 그의 책 ’20 Hot Potatoes Christians are Afraid to Touch’ 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자기경멸은 시간낭비로부터 올 수 있다. 몇 시간씩이나 텔레비젼을 본다거나 빈둥거리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한 적이 있었는가? 그렇게 보낸 날의 마지막에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기억해 보라. 아마도 우울해졌고 자신이 미웠을 것이다. 만약 그런 식으로 며칠을 반복한다면 필히 자기 경멸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시간 낭비는 가장 파괴적인 결과를 가지고 온다. 무엇인가 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주말을 빈둥거리며 보낸다면 결국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나 자신이 한 때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청소년 때에 우리 가족이 남미로 이민을 갔는데 그곳에서 많은 방황을 경험하였다. 부모님이 시키는데로 집안 일을 돕다가 쉬는 날이 되면 예수님을 믿지 않던 나는 어디 특별히 갈 곳이 없어서 극장을 주로 찾았었다. 돈이 많지 않으니 좋은 극장은 갈 수 없고 한번 들어가면 3편을 해주는 곳을 찾았다. 그래서 오전에 들어가면 저녁이 되어서야 나오곤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친구들과 거리를 배회하며 밤새도록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때의 내 마음이 어떠했는가는 뻔한 일이었다. ‘나’라는 인생의 무의미함과 가치없음을 한탄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가 일수였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날을 ‘왜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님을 만나게 되고 교회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과 그분이 육신으로 이 땅에 내려오사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있었는데 주님이 나같은 가치 없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면 나도 그 분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교회에서 일거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 낭비를 하며 가치 없게 살았으므로 교회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너무 그 분을 위해 일이 하고 싶었기에 열심히 일을 찾았는데 드디어 찾은 일이 변소 청소와 청소년들이 예배드리는 장소의 의자 정돈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러운 화장실을 치우는데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고 감사한지…나같은 쓸모 없는 자가 주님을 위해 일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러 오는 학생들을 위하여 의자를 정돈하던 그 때의 기쁨은 세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가 지나면서 나는 서서히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고 인생은 너무 귀중하기 때문에 결코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며 시간을 쪼개가며 부지런히 공부도 하고 일도 해 왔다. 그 결과 그렇게도 가치 없게 생각 들었던 내가 이제는 목사가 되어 청년들을 지도하는 입장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나의 변화된 삶을 통해 선을 위해 사는 삶만이 우리 인생을 힘있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에게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선을 행하는 삶이 복되다는 것을 자신있게 강조한다.

Tony Campolo도 역시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봉사를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재정립할 수 있다는 이 쉬운 이치를 사람들이 왜 깨닫지 못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방문이 필요한 외로운 사람, 방문전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 사랑의 관심이 필요한 어린이는 언제든지 있다. 만약 우울한 사람이 스스로를 잊고(예수님이 제안하셨듯이)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버리면 그들은 자신의 위대한 가치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짧게는 2주에 길게는 2년까지 진행되는 단기선교 사역 봉사 기회도 많이 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를 경멸한다면 당신을 도와 줄 수 있는 마지막 한가지는 어린 시절의 꿈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의 말 중에 끝의 어린시절의 꿈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라는 말은 어렸을 때는 누구든지 남을 위한 선한 삶을 꿈꾸기 때문에 이제 그 일을 한번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는 이런 말씀이 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가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저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38-48)

내가 이 말씀을 언급하는 이유는 혹시 선한 일을 하려고 해도 마땅히 선을 행할 대상이 없다는 핑계를 들 사람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비인격적인 사람들에게 행하면 그것이 더 큰 복 됨을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결국 나 자신을 살리는 선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될 줄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