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에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군대의 최고 사령관에게 칼을 수여하는 뉴스를 본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이미 군대에는 최첨단 무기들이 개발되어 나라에 배치되고 있는 시기였다. 위성으로 적국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20세기에 칼을 수여하는 모습이 무척 우스웠었다. 강감찬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이 살아계셨으면 모를까 미사일 한방이면 수백 킬로 떨어진 적국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요즘에 무슨 칼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이 최근의 영화 한편을 보고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미국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티스버그”라는 영화였는데 너무 인상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군대를 이끌고 가는 장군들의 모습이었다. 부하들에게는 총과 대포를 주면서도 실상 자신들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장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긴 칼뿐이었다. 이들은 칼을 높이 쳐들고 부하들 맨 앞에서 적진을 향하여 나아갔다. 뒤로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향하여 나아가라고 부하들에게 외치면서 그들은 계속해서 앞서 갔다. 총알이 날아오고 대포의 포탄이 터져도 절대로 칼을 내리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적진을 향하여 죽을 때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들은 부하들에게 조금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앞에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 모습 때문에 그를 따르는 부하들은 자신들의 장군을 바라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 갈 수 있었다. 장군들이 뽑아든 칼은 적을 찌르기 위한 칼이 아니었다. 이 칼은 부하들을 향해 높이 쳐든 자기 자신들이었다. 이 칼이 내려가면 자신도 죽는 것이었다. 칼은 무기가 아니라 죽음에 굴하지 않은 지휘관의 희생과 생명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 한동안 영적 지도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영적 지도자는 말씀의 칼을 높이 쳐든 자이다. 이 칼을 바라보고 주의 성도들은 따라 온다. 그러나 말씀의 칼이 내려오거나 칼을 집어넣은 체 뒤로 물러선다면 주의 성도들은 영락없이 전쟁에 실패하는 패잔병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말씀의 칼을 내린 적은 없는가? 앞에서 퍼부어대는 세상의 총알과 대포 앞에 발걸음을 뒤로 한 적은 없는가? 소위 잘나가는 신세대 목회자들이 누리는 인기가 부러워 말씀을 세상에 타협하려고 한 적은 없는가? 칼은 들었지만 희생과 생명이 담기지 않은 칼을 든 것은 아닌가?

기독교인이라면 시대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단순히 자신의 꿈과 목표만을 위하는 사람은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이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도 시대를 주도할 수도 없다. 자신의 직업과 재능을 주님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마음만 있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말씀의 칼을 빼어들라고…”. 말씀은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요 강한 힘이다. 말씀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삶을 고정할 수 있는 자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에게 주님은 가야할 곳과 이루어야 할 일들을 보여주실 것이다. 말씀은 시대를 미리 볼 수 있는 혜안의 눈을 가지게 한다.

인터넷과 위성통신의 시대에도 말씀은 여전히 인생의 유일한 나침반이다.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이제는 어떤 설교를 들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설교가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말씀의 홍수는 영혼을 무력하게 만든다. 우리의 목표를 뿌연 흙탕물로 덮어버리고 만다. 이제는 말씀의 홍수가 아니라 말씀의 칼이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