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롬 8:6)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으로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3,표준새번역)

성령으로 예배하는 방법에 대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후임으로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담임 목회자였던 R. T. 켄달이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영으로 예배하기 위해 성령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기가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자기가 뜻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획을 따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엡 1:11, 표준새번역)

성령님은 하나님이 가장 받고 싶으신 예배가 어떤 예배인지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마음먹은 성도를 성령께서 도우신다. 아니 도와주고 싶으셔서 안달하신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간구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만을 고집하여 예배드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예배의 시작부터 마지막 끝날 때까지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켄달은 성령을 존중하는 방법을 3가지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인격이신 성령의 민감성을 존중해야 한다. 성령은 완전히 순결하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민감하시다. 그래서 그분은 연약한 인간으로 인해 쉽게 근심하거나, 쉽게 상처 입고, 소멸한다. 죄가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 없다.

‘쉽게 상처 입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다. 성령님은 내 연약함 때문에 늘 상처 입으신다. 언제는 자신에게 모든 마음을 다 쏟아 놓을 것처럼 울고불고 부르짖는다. 목소리 높여 찬양한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우리에게 임하소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 또 반복해서 손들고 이 찬양을 부르고 또 부른다.

그러나 며칠 후에는 마치 성령이 없는 것처럼 혼자 룰루랄라 자기 좋아하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산다. 그렇게 임해달라고 해서 옆에 왔거늘, 곁에 동행하는 자신의 존재는 아랑곳 않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행동만 골라서 한다. 옆에 계신 인격적인 성령님께서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시겠는가? 얼마나 상처를 입으시겠는가?

그분은 너무나 인격적이셔서 참고 또 참고 그냥 조용히 그 옆 자리에서 기다리신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신다. 그토록 인격적이시고, 사랑이 많으신다. 그러나 너무 안타까워서 바라보시며 탄식하신다. 그러다가 너무 오래되면 성령을 소멸케 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두 번째는 그분의 공평성도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조종하지도 못한다. 성령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성령의 판단에 대해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분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마 20:16)게 하실 수 있다.
이 말은 성령님은 모든 성도에게 영적 성숙도, 삶의 환경, 성품과 성격에 맞게 적절하게 대하신다는 것이다. 때때로 어떤 성도는 나보다 더 말씀을 잘 이해한다. 찬양에 더 큰 은혜를 누린다. 영적 성숙도가 더 빨라 보인다.

그러므로 나보다 잘 나가고 잘 풀리는 것 같은 다른 성도에 대해 비교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나를 향한 성령의 인격적인 인도하심에 대해 지금 현재 나에게 이것이 최선임을 신뢰하고, 매 순간 현재 그 분의 인도하심에 믿고 자신을 의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성령의 충동을 존중하고 이에 순종해야 한다. 빌립보서 3장 3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라는 문장은 헬라어로 ‘성령의 충동으로 예배하는 자’라고 앞에서 말했다. 성령은 우리의 영을 충동하신다.

어떤 분이 교우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미움과 격정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교회를 떠남으로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드리면서 성령께서 그 마음을 어루만지셨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마음이 이상하게도 풀어졌다. 그 날 이후, 예배드릴 때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움직이셨다. 새벽기도에서 기도하기만 하면 눈물과 함께 그동안 맺혔던 모든 상한 마음을 풀어주셨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과 마음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때론 말씀으로, 때론 음성으로, 때론 지혜로 충동하신다. 빌립보서 3장 3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라는 이와 같은 성령의 충동으로 예배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맺힌 것이나 풀어야 할 것이 있으면 풀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마음껏 드러내실 수 없다. 성령과 인격적으로 소통할 때 비로소 예배는 영원과 맞닿은 사건이 된다. 예배의 현장은 막혔던 영적 세계를 향해 고속도로가 뚫리는 4차원의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