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글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비밀을 암호화하고 그것을 해독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성경의 암호화와 암호 해독방식은 그것만이 아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다른 암호 해독법에 대하여 살펴 보려고 한다.

엠마오로 가는 길, 암호 해독의 길

우리는 서둘러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12km쯤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던 두 제자를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곧 예수님께서 그곳에 나타나셔서 직접 암호 해독법을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열두 제자 중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가깝게 따르던 글로바라는 제자와 다른 제자 하나가 엠마오 마을로 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일요일 아침은 지난 금요일, 십자가 사건이 있던 날 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는 것, 베드로와 요한이 그것을 확인하고 돌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 당황해하며 길을 가던 중에 한 남자가 나타나 그들에게 지금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들은 예수님이 구원자인줄 알았는데 결국에 그는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다며 슬픔의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이에 대하여 그 남자가 그들을 책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누가복음 24:25-27).

그 제자들은 설명을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제자들은 마침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눈이 밝아져, 그 남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을 알아 보았다. 그러자 예수님은 떠나신다.

그들은 가슴이 벅차 단숨에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이 모여있는 예루살렘으로 달려갔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참이었다. 글로바와 다른 제자도 자신들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셔서 그간 귀로 듣고도, 눈으로 보고도 이해하지 못함으로 암호가 되었던 십자가의 비밀을 다음과 같이 풀어 주신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누가복음 24:44-48).

우리는 여기에서 아직도 충격에 휩싸여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혼돈하는 제자들에 책망도 하시지만 끝까지 챙기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모습을 보게 된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항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숨겨진 암호을 해독하게 하기 위하여 알려 주신 암호 해독법이다. 예수님은 두 번에 걸쳐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암호를 푸는 방법을 알려 주신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한 번만 기록되어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두 번 기록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누가는 이것을 두 번이나 포착하여 기록한다.

예수님의 암호 해독법

눈으로 보고,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함으로 암호가 되어 버린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예수님의 암호 해독법은 이러하다. 모세의 글인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른 선지자들의 글, 그리고 시편에서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주의해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구원자의 증거, 복음의 전파가 이미 예언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구약의 말씀과 사건들이 예수님을 직접 언급하며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것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고, 예표인지, 예수님께서 무엇을 인용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또한 그 기록들과 예수님의 말씀과 사건을 대입하여 더 큰 암호를 해독해 내야한다. 물론 기계적인 대입만으로는 그 암호가 술술 풀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우리의 믿음과 성령님의 감동이 필요하다. 그러한 믿음과 성령의 감동이 있고 나서는 성경의 가장 깊은 비밀의 해독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짝으로 본 역사, 대칭으로 푸는 암호

해독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대칭되는 짝을 찾아 대입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건들이 짝을 염두에 두고 이곳 저곳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암호 해독을 위해서는 짝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은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비밀이기도 하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이사야 34:16).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기본적으로 동물들의 짝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짝의 비밀은 비단 동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역사는 막연하게 반복되지 않고 예견, 예시, 예표된 이후 완성되는 대칭구조를 취한다. 여기엔 하나님의 속성과 창조, 역사 통치 섭리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방법은 미신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방법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알파와 오매가, 처음과 나중의 짝을 가지신다.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책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의 짝을 가지고 예언, 예표를 하고 그 성취된 짝을 찾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여호와의 입이 명하시고 그의 신이 모아주신 짝을 찾아 살피면 그 대칭의 짝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성경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예언의 조각들을 잘 모아 정확한 곳에 배치하면 하나님 섭리가 가진 비밀을 설명하는 선명한 모자이크가 된다. 이렇게 서로에게 감추어져 있는 비밀들이 만나 암호가 해독되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시대별로 혹은 주제별로 나열하면서 결국 구약의 예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삶을 통해 완성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암호 해독법을 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을 모르면 예수님과 십자가에 대하여 온전히 알 수 없다. 동시에 예수님을 이해 하지 못하면 구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구약만 연구한 유대인들은 아직도 구원자를 모른다. 그러므로 구약이 없는 신약, 신약이 없는 구약은 아쉬운 반쪽들이다. 구원의 큰 그림은 둘을 합쳐서 볼 때 확실해 진다.

대칭의 중심점, 십자가

구약의 많은 예언들은 특별히 예수님과 십자가를 대칭적 목적지로 암호화 되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모든 비밀 암호들의 문이고 예수님은 그 열쇠와 같다. 예수님 자체가 암호일 뿐 아니라, 십자가의 7언은 예수님에 대한 암호를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며 그 자체로 암호문들이다. 암호는 뜻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의미를 알 수 있는 일종의 ‘코드’이다. 암호를 풀려면 해독법에 근거하여 성경을 읽어야 한다. 암호를 일상어로 취급하여 풀려면 안 풀린다.

오래된 암호, 친숙한 해독법

지금까지 살핀 암호 해독법은 당연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말씀들은 지난 2000년간 늘 거기에 있었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성경을 암호로 보는 것이고, 이 암호성을 심각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 기록자들이나 바울 사도 등 많은 이들이 이 방법을 활용하여 성경의 많은 암호들을 해독해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암호들이 우리의 해독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보다는 다른 방법들에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성경을 눈으로 읽기만 하면 이해가 될 책으로 가볍게 생각한다든지, 혹은 문자나 문체의 숲에 빠져 성경을 지엽적으로 이해하고 성경에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자의 숲을 빠져 나오면 산과 산맥 뿐아니라, 대륙과 대양, 지구와 태양계, 은하계와 우주, 천국과 지옥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