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애틀란타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이 찾아 왔다. 가을은 옛부터 등하가친의 계절이라 하여 등불을 밝히고 책을 열심히 읽는 독서의 계절로 알려져 있다. 이민의 삶을 살아 가면서 많은 이민자들이 독서의 빈곤에 빠져 있다. 우리 교회 도서관에도 그렇게 책이 많이 비치되어 있지만 독서 인구는 불과 교인들의 10-20% 정도라고 도서관 봉사자들은 말한다. 책읽기를 소홀리 할 때 우리의 정신들은 황폐해지고 생각이 빈약해 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 속의 내용은 내 삶과 영혼 속에 집어 넣는 유익한 작업이다. 좋은 책에는 반드시 그 책 안에 인생의 깊은 의미와 사건들이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읽기라는 과정을 통해 그 책에 담긴 정신 사상을 나의 것으로 소화하고 내재화하는 작업이다.

일년에 한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러면 광화문 교보 문고나 강남 터미널 앞 기독 서점들을 즐겨 찾곤 한다. 그곳에서 하루 정도는 머물면서 그동안 나온 신간들을 접하며 독서의 삼매경에 빠진다. 그리고는 책들을 이민 가방으로 한가방 정도 구입하게 된다. 미국에 거주하는 여건상 많은 책들을 일시에 구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미국으로 가지고 와 몇 달 동안 씨름하며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책 읽기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새로운 세계의 여정 길에 나선다. 양서를 읽다가 보면 이전에 품지 않았던 선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 찾아 오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정신이 유입게 만든다. 그 새로운 정신이 우리의 언어와 생각을 새롭게 한다. 그리고 그 언어와 정신이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양서를 읽어 갈 때 좋은 사람이 되는 까닭은 독서가 우리의 의식과 언어의 지평을 넓혀 주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우리 시절에는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름이면 지금은 없어진 구 국립 중앙 도서관에는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많이 찾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위인들의 전기들을 많이 읽었던 그런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에도 늘 책을 끼고 살았다. 나의 큰 누님은 이런 나에게 세계 문학 전집을 한 질 사주어 몇 달 동안 그것에 빠져 살기도 하였다. 그 엄청난 정신의 대해에 파묻혀 밥 먹는 것도 잊어 버릴 정도였다. 그러한 독서의 삶이 오늘날 나의 정신 세계를 풍요하게 만들어 주었다.

목회자가 되고 나서 책을 취사 선택하여 읽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난 뒤부터 세상의 책들이 그렇게 싱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깊은 사유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까 내 영성에 무언가 자극을 주고 깊이를 더할 책들을 선별하여 읽기 시작했다. 이제는 독서가 더 이상 난독이 아닌 집중해서 읽은 정독 스타일이 되었다. 특히 중세 교부들이나 기독 사상가들이 쓴 기독교 고전에 대한 깊은 맛을 느끼게 되었다. 청교도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깊이 한 줄 한 줄 묵상하며 읽은 느낌은 언제나 감격스럽기만 하다 .

많은 책을 읽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고 그 책에 담긴 사상과 정신을 얼마 만큼 내가 흡입하여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가 그것이 보다 중요하다. 책 읽은 사람들은 언제나 기품이 있고 인격에 고매한 향기가 나타난다. 그 책 읽기로 인해 인생의 안목이 깊어지고 마음이 넓어진다. 그러므로 가장 존경해야 할 사람은 그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그런 독서하는 사람이다.

특히 이 가을에는 하나님의 숨길이 담긴 책을 많이 읽도록 하자. 그런 책에는 우리 모든 삶의 주제가 되시는 그 창조주에 관한 말씀, 생각, 언어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책을 통해 하나님의 영을 공급받으면 우리 영혼 가운데 새로움과 거듭남이 찾아 온다.

책을 읽으면 어느 덧 우리의 인생은 아름다움이 넘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