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새벽예배. 한국교회 부흥의 첫 번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척교회부터 대형교회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신앙성숙과 더불어 부흥을 소망하는 곳에는 새벽예배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이에 기독일보는 남가주 한인교회들의 새벽 설교를 집중 조명하여 새벽제단에서만 내리는 특별한 은혜를 나누고 개교회를 넘어 지역과 미주 전역의 부흥을 함께 소망하고자 한다.

남가주동신교회(담임 손병렬 목사)의 토요 새벽예배는 주일예배와 같이 정성 가득하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더하여 잘 준비된 예배는 더 큰 은혜를 경험하는 자리가 되어 성도들이 사모하는 새벽예배가 되었다. 손병렬 목사는 욥기를 본문으로 ‘곤경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전하며 “어떤 곤경이 와도 모든 일에 입술이나 생각으로 범죄하지 않았던 욥처럼 순전한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고 권면했다.

<본문: 욥기 42장 10~17절>

욥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됩니다. 성경을 보면 욥처럼 고난을 당했던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사람입니다. 욥이 겪었던 고난 하나만 우리가 겪게 되어도 그 사람은 무너질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다 잃었습니다. 어느 날 잔치하다가 아들딸 10남매가 죽었다고 해보십시오. 하나만 죽었다고 해도 힘든데 말입니다. 종들도 다 죽고 짐승들은 벼락 맞아 죽고 남은 것들은 적들이 와서 약탈해 가고...자식 뿐 아니라 재산까지 다 잃었습니다. 이쯤 되니 아내도 원망하고 도망갑니다. 뿐만 아니라 욥의 몸이 욕창으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가정, 자식, 건강, 경제가 다 무너졌습니다.

이런 사람 있습니까? 하나라도 잃으면 큰일 나는데 평생에 겪을 일을 한꺼번에 다 겪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도대체 욥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욥의 고난은 욥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욥을 테스트 해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묵인 아래 사단이 시험했습니다. 욥기 1장 1절 보십시오. 우스 땅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죄를 모르는 자였고 오직 하나님 밖에 모르는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욥기 후반부에 보면 욥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합니다. 욥기42장 6절을 보십시오. 욥에게서 받는 충격입니다. 어떻게 회개할 수 있나?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그런데 욥은 회개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했을까요? 내면에 깊숙이 있었던... 자신은 ‘행복하고 문제가 없으며 잘못이 없다’라며 가졌을지 모를 우월감을 다 꺼내서 회개했을 것입니다. 교만했던 마음이죠. 남들과 비교평가해서 자기 스스로 위로 받았던 마음까지도 모두,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죄를 꺼내어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남의 불행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저 사람 왜 저래?’ ‘저 사람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참된 신앙인은 어떻습니까? 로마서에 보면 스스로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하나님께 판단 받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말하며 삽니까? 판단하는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습니다. 남의 실수와 잘못을 봤을 때, 내가 저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한 것까지도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욥은 잘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그제야 회개하게 됐습니다. 막상 다 잃어보니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새벽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할 때마다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한 형제자매라면 저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저들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가 있습니다.

본문의 10절입니다. 욥이 벗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격려하고 사랑하고 좋은 것을 해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죄 지어서 벌 받는 것이라고 차라리 하나님 원망하라고 욥을 비난했다. 이럴 때 제일 아픕니다. 나를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거나 원망하고 오해할 때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욥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벗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분께 생명과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가 뭐라던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사람이 잘되기를 빌어야 합니다. 혹여 그 사람이 안 받아도 결국 그 축복은 나에게 옵니다. 영적인 원리입니다. 복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욥기 1장 22절 모든 일에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던지 원망하며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하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욥기 2장 3절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단이 아무리 욥을 격동케하고 쳤어도 욥은 순전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순전한 믿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사단을 불러서 하나님이 사단에게 하는 말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을 우리도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왕 신앙생활 하는데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이런 말 들어야 합니다.

욥기 2장 10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입니다. 성경은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이런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힘들 때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에 욥은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했습니다.

아직 풀리지 않는 문제나 힘든 문제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오늘 본문 보십시오. 10절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곤경을 돌이키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순전히 지키고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했을 때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소유를 갑절이나 주셨으며 더 예쁜 자녀들을 주셨고 140년 동안 장수하며 복 누리며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회복시키시고 이전보다 더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