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은 성경에 나오는 특별한 개념 중에 하나입니다.

도피성은 뜻하지 않게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복수하려는 사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도피성은 요단강 동편에 3곳, 요단강 서편에 3곳, 모두 6곳에 있었으며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잘 다듬어져 있고, 갈림길에서는 도피성을 표시하는 안내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피성은 구약 성경에 모두 네 곳(출 21:12-13, 민 35:1-34, 신 19:1-14, 수 20:1-9)에서 언급되고 있으며, 당시에 있던 복수의 문화에서 구원과 용서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옹호하시거나 계획적인 살인이나 고의적인 살인자를 보호하지는 않지만 실수로,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를 사람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모습을 도피성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도피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지정하신 사랑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누구나 찾아갈 수 있도록 높은 산지에 있는 성들로 정하셨고, 한 곳이 아닌 여섯 곳이나 지정하셔서 도피성으로 피난하는 중에 도중에 붙잡혀 죽게 되는 염려를 제거하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이방 사람들, 누구나 찾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과 복수의 율법으로부터 피난처를 제공하고 기회를 줌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지정하신 것은 사람들이 실수할 수 있고, 본의 아니게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신 조치입니다. 병으로 아파본 사람은 병든 자를 이해하는 것이 남다르고, 자녀의 탈선을 경험한 부모는 다른 집 자녀의 방황을 가슴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피성을 지정하신 것은 우리가 실수할 수 있고, 마음과 다르게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배려하신 그분의 사랑입니다. 도피성에 누구나 갈 수 있고, 가는 길이 잘 다듬어져 있고, 도피성이 여러 곳에 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초청하시고, 보호하심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우리를 잘 이해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도피성은 또한 예수님을 설명하는 상징의 자리입니다.

도피성에 도착한 피의자는 먼저 성문 입구에서 성의 장로들 앞에서 자신의 사건을 진술해야합니다. 마치 모든 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 상처와 아픔을 고백하면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또한 원하지 않았지만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나고, 그 속에서 두려워하는 자신을 고백하면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도피성은 바로 그런 장소입니다.

또한 도피성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아무리 복수하는 사람이 무섭고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도피성 안에 있는 죄인은 안전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의 장로와 같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 넘겨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피성을 떠나면 죄인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보호의 장막이 걷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여리고의 붉은 줄을 걸어놓은 라합의 집안에 있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 거와 같이 주님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의 죄가 사함 받는 것은 그 성에 살고 있는 대제사장이 죽었을 때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 안에 있는 살인자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살인자의 생명이 대제사장의 생명과 연결되어서 대신 속죄함으로 구원을 얻는 대속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결국 도피성은 우리를 부르시는 은혜와 용서의 자리입니다. 도피성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었습니다. 시간이나 사람을 제한하지 않고, 피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도피성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사람들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 35:15절에 보면 “이 여섯 개의 성들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외국 사람들을 위한 도피성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그곳으로 도피할 수 있게 하라.”(우리말성경)고 되어있습니다. 외국 사람이든, 나그네든 도피성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한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다 부르십니다. 또한 용서하십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자유를 누림은 십자가를 통한 사랑과 용서의 이중주를 들려줍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초청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로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주님에게로 갈 수 있습니다. 도피성은 결국 은혜와 용서의 초청이요, 구원의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 우리를 이해하시는 하나님, 그 분과 더불어 이번 한 주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자리로, 사랑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