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선교대회 특강 1 올림픽 탁구 금메달 리스트인 양영자 선교사 강의가 28일 임마누엘장로교회(손원배 목사)에서 열렸다.

양영자 선교사(내몽고)는 "훈장도 받아보고 여러 나라 다니면서 좋은 대접 받아봤지만 한 영혼이 달라지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라며 선교사로서 자부심을 나타냈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탁구선수에서 선교사로서 자원하게된 과정과 함께, 선교사로서 내몽고지역에서 겪은 아픔들을 함께 간증했다.

86 아시안 게임 그당시 한국남녀탁구선수들은 모두 크리스천이었다고 밝힌 양영자 선교사는 "아시안 게임 후에 중국 심천이라는 곳에서 탁구시합이 있었는데 전도지라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의사가 부상으로 절대 나갈 수 없다고 해서 링겔을 갖고간후 다시 입원하는 조건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탁구의 열기는 굉장하다. 당시 한국이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딴 것은 중국에서 이변이었다. 중국에 갔더니, 내 얼굴을 다 알아보고 사인해달라고 찾아왔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도지를 포개어나눠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가 다른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도 선교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후 국제대회가 많은데 전도지를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인 이영철 선교사는 아침에 말씀큐티를 하는데 선교하지않으면 안되는 쪽으로 말씀을 주셔서 당시 연합뉴스 국제부기자를 6개월 휴직하고 선교의 길로 들어섰다.

97년에 남편을 따라 몽골에 간 양영자 선교사는 "현지인 4명과 함께 교회개척하고 남편이 교회를, 나는 탁구를 가르쳐주면서 사역했다. 처음에 굉장히 큰 갈등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큰 갈등은 현지인을 사랑하고자 갔는데,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이 가장 괴로웠다. 문화충격, 회복, 통합 등 선교훈련을 받았지만 실제현장에서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어울려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몽골사람들은 공산주의로 오랫동안 살면서 자기것이라는 개념이 없고 약속을 지키기 어려웠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고 문화충격에 대해 다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내가 사랑해야 될 대상에 마음을 활짝열지 못하고 현지인들에 대한 피해의식 등을 갖고 있었다"

양영자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겪은 체험담을 진솔하게 전했다. "하루는 너무 추운 겨울날 치아가 아프고 두통이 심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입술을 비비는데 입술이 엇갈렸다. 얼굴 한쪽이 전혀 감각이 없었다. 병원이 수도에 있어서 열시간 기차를 타고 병원에갔다니 바이러스로 인한 근육마비라고 했다. 약을 먹었는데 한달, 두달이 지나도 얼굴근육이 풀릴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 선교사는 "남편의 조언을 들으며 내가 아픔을 겪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기 위함임을 깨닫게 됐다. 내가 그동안 선교지로 가서 정말 사랑해야될 현지인을 사랑하지 못한 것 회개하면서, 저희 교회 나왔던 교인들 심방하면서, 그들의 아픔,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그런 일 하면서, 안면도 풀리게 해주셨다"고 고백했다.

그는 중국 내몽고구 체육국 선수들이 한국과는 달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업은 전혀 못하고 개인시간도 없이 오로지 탁구연습을 해야하는 상황에 안타까워했다. 또, 경쟁이 너무 치열해 중국에서 탁구선수로 뽑히기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양 선교사는 현재 이들을 양육시키면서 성장중에 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어디 가든지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아버지의 마음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다면 어디 가든지 선교를 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이 준비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선교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시고 추수할 일군을 찾고 계시는데,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가 되었던지 자신이 가진 재능, 시간, 물질을 나눠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여러분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