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큰 질문은 바로 고난과 고통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첫 번째 반응은 “Why me?" 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인지, 도대체 하나님은 살아계신 것인지… 별의별 생각과 원망과 근심에 사로잡히기가 쉽습니다. 고통이 없고 고난이 없는 사람이 없기에, 고난에 대해서, 그동안 인생역경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밤을 새고도 모자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대신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은 하나님과 개인의 문제입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울 수밖에 없습니다. 함부로 충고나 조언을 하려고 하다가는 욥을 괴롭힌 친구들과 같이 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난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고난은 고난 자체의 문제보다는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고난은 질병을 생각해봅시다. 질병은 왜 존재 하는가? 단순히 죄의 결과인가 궁금합니다. 그런데 전체 세균의 99%가 인간에게 해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익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유산균만 좋은 세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균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식물은 산소를 배출할 수 없고, 동물은 음식을 소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폴 브랜드의 말에 따르면, 질병을 일으키는 대 부분의 요인들은 필수적인 유기체가 아주 극소한 변이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랍니다.

허리케인으로 미국 중서부에도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습니까? 그런데 허리케인과 계절풍이 없으면 기후 조건의 미묘한 균형이 뒤집어지고, 살인적인 가뭄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통증은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성경에서 문둥병, 나병이라 일컫는 병을 치료하는 선구자가 폴 브랜드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나병치료에 일생을 바친 분입니다. 폴 브랜드의 나병치료로 인해, 나병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기도 했고, 나병환자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치료도 많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병 자체로 인해서 손과 발이 없어지고, 코와 눈이 뭉그러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병의 치명적인 증상은 통증 감각의 상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나병의 치명적인 증상이라는 사실입니다. 폴 브랜드 박사가 어느 날 창고 문을 열려는데 녹이 슬어서 잘 열리지 않아서 애를 쓰는데 한 어린남자아이가 오더니 “그것도 못 여세요?”하면서 한 번에 여는데 깜짝 놀랐답니다. 아이 손가락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서 뼈가 보이기까지 하는데,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웃고 있더랍니다. 그걸 보고, 폴 브랜드 박사는 왜 나병 환자들의 손이 점점 짧아지는지 알게 되었답니다. 나병을 치료하면서 폴 브랜드 박사는 고백합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놀라운 시스템입니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많은 고난들을 겪으셨을 겁니다. 아직도 해석하지 못한 고난들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분명히 믿건데, 선하신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실 때는 유익하지 않은 고난은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새 가족 심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신지 2주도 안된 분이셨는데, 아침 9시30분에 심방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근 때문에 30분 앞당겨 달라고 해서 그렇게 심방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만났는데 그분이 저를 붙잡고 간증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목사님 심방시간을 앞당겨서 제가 은혜를 받았잖아요.” 저는 제 설교에 은혜를 받았나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목사님 가시고 바로 부엌 찬장이 와르르 무너졌지 뭡니까?” 저는 너무 놀라서 “그런데, 그게 무슨 간증이세요?” 그분의 해석이 기가 막힙니다. “심방시간을 앞당기지 않았으면 예배 중에 찬장이 떨어졌을 것이고 저도 민망하고 목사님도 얼마나 난감하시겠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방시간을 앞당기게 하셔서 예배 잘 드리고 가셨으니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분 같으면 “교회를 옮기자마자 왜 이리 안 좋은 일이 생기나?” 하면서 시험당할 법도 한데, 그 새 가족은 짜증날 법한 일속에서도 은혜를 발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나고 나면 은혜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고난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야고보를 통해서 한 마디로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 고난은 기도할 제목입니다. 결코 원망하거나 시험에 빠질 일이 아닙니다. 욥의 자세가 참으로 좋은 것은 그 엄청난 고난 중에도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세요? 짜증내지 마시고 입으로 원망하지 마세요. 다만 기도하세요. 고난을 통한 축복이 분명히 예비 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