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임시수도인 라말라에서는 한 특이한 연주회가 세계인들의 관심속에 열렸다. 이스라엘과 아랍계인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의 젊은이들이 유태계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의 지휘아래 성공적인 연주회를 가졌던 것이다.

이 오케스트라의 이름은 이스트-웨스트 디반 오케스트라이다. 이 연주회는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석학 영문학자인 에드우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음악을 통한 평화의 비젼과 그 실현을 위한 헌신적 노력이 맺은 결과였다. 몇 일간 합동 연습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양 젊은이들 간에 삐걱거리기도 했으나 음악 안에서는 선뜻 하나가 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바렌보임은 연주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 “이번 연주회를 통한 음악이 당장 평화를 가져다 줄 수는 없을 지라도 평화를 위한 첫 출발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연주회가 끝나고 라말라를 떠나는 이스라엘의 젊은이들과 이들을 떠나보내는 아랍의 젊은이들은 뜨거운 포옹과 눈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나는 이 다니엘 바렌보임이 너무도 좋다. 그는 명지휘자 일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도 명성을 떨치는 존경받는 음악인이지만 그 소탈한 인품은 그의 격의 없는 연주복에서 늘 감탄케 한다. 연미복이 아닌 노타이차림 평상복으로 지휘봉을 들지만 그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은 가히 활화산과 같다.

그는 또 청소년들을 사랑하고 저들을 세계 평화를 위한 전령사로 키우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청소년을 아끼고 사랑했던 번스타인이 다만 음악을 위한 음악만을 고집했다면 바렌보임의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 음악과 평화라는 대 과제를 놓고 고심하는 세계적 음악인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스위스 출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상임인 샤를 뒤투아(Charles Edouard Dutoit)가 바로 그런 음악인 중에 하나이다.

그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한 린덴바움 뮤직 페스티발을 주도하기 위해 미국내의 유명한 음악연주인 14명과 함께 내한하여 한 여름 비지땀을 흘리며 사랑의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연습시간에 늦게온 단원들에게 불호령을 내리기도 하지만 자상한 아버지처럼 “애들아 이것은 피아니시모야 마음에 열정을 가지고 연주해야지!” 하면서 분위기를 즐겁게 창출하기도 한다.

그런 그가 가진 원대한 꿈은 남북의 음악인들을 모아 합동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회를 여는 것이다. 뮤직 페스티발의 결과로 열린 컨서트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만약 뒤투아의 이 이상이 현실이 된다면 그 이상 아름다운 것이 없을 것이며 나도 이 일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뒤투아 뿐이 아니다. 러시아 출신으로 시드니 오케스트라 상임을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 역시 남북의 합동연주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세계 음악인들이 음악을 통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R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대곡 영웅의 생애가 40여분에 걸쳐 연주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는데 아마도 그는 그 환호 속에 평화 통일을 열망하는 한국인들의 염원을 더 확고하게 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