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는 36년간의 일제의 노예에서 해방된 날이다. 언론 출판 결사가 통제되고 심지어 우리말을 빼앗고 성 까지도 바꾸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탄광으로 끌어가고 여자들은 군인들의 위안부로 보냈다. 그런 악행에 반대한 애국지사들에게 모진고문을 하고 또한 잔인하게 죽였다. 세계의 역사에 식민지가 되었던 나라가 많지만 일본 만큼 잔인한 나라는 없다. 그러했기에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의 감격은 지옥에서 천당 가는것 만큼이나 컸다. 새장 속에 갇혀 36년간 목숨만을 유지했던 새가 철문을 나왔을 때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가듯 그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던 한 민족은 자유를 얻어 언론이 되살아남은 물론 닫혔던 교회가 문을 다시 열고 정당이 생겨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여 한 나라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세워 나갔다.

그러나 그 와중에 자유라는 명목으로 이북 공산당의 지령을 받은 남쪽의 적색분자들은 정부를 뒤 엎으려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혼란과 역경을 겪게 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앞으로 전진하다 6. 25라는 남침을 맞게 되었다. 그 때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나라들(UN)의 도움으로 다시 위기를 넘기고 오늘의 자랑스러운 한국이 된 것이다. 즉 해방과 자유를 기반으로 한 독립국가로 세계에 우뚝 선 한국은 공갈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 이북의 도발을 철저하게 대응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서민들의 질적 생활의 향상을 꾀하며 나아가서는 세계평화를 도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국가란 다른 나라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자급자족을 하면서 이웃 나라와 더불어 상부상조할 때 그 의미가 큰 것이다.

개인에게도 3가지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시작은 해방이다. 마귀의 사주를 받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의 욕심에서 해방되는 일이다. 이 욕심은 땅 보다 더 뜨겁고 한계가 없는 것이다. 그 욕심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난다. 많은 경우가 돈이고 다음은 괘락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권력 명예 성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욕심은 자석처럼 가까이 갈수록 끌어당겨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서 해방 되었다가도 다시 마귀에게 끌려가서 헤어나지 못 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본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경고 한 것이다.

다음은 자유다.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에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권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갈래 길에서 자기의 유익 쪽으로 기울어진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선하고 정의롭고 남을 위한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자기의 본능을 쫓아가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오죽 했으면 성자 바울은 경고하기를 '너희에게 주어진 자유로 방종 하지 말고 남을 위한 봉사의 기회로 삼으라(갈5:1~13) '고 하셨을까.

끝으로 독립은 타의에 의해서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고 확실한 목표인 정의와 공익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일은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고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힘을 묶어서 이루어 가는 것이다.

사마리아라는 곳에 한 미인이 있었다. 그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육체미를 가지고 5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6 번째 남자와 살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녀는 돈 많은 남자, 인기 있는 운동선구, 권력가, 잘생긴 남자, 존경 받는 남자들과 살면서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것 같았으나 오히려 영적인 기근과 기갈을 더 느끼게 되었고 후에는 아주 무능한 남자와 살았다는 어느 신학자의 해석이다. 그녀는 이모저모로 욕심의 노예생활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그 욕심에서 해방이 되었고 또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그 후 그녀는 주어진 자유로 사마리아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하며 독립된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게 된 것이다.

오는 8.15를 기하여 해방 자유 그리고 독립을 다시 되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