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네티컷 주 리치필드(Litchfield) 지방을 중심으로 제 2차 영적 대각성운동이 일어나면서 그 여파는 보스톤 서북쪽 현재 뉴욕 알바니 근처에 있는 윌리암스라는 소읍에까지 파급되었다. 원래 뉴잉글랜드 유적답사에 윌리암스일정은 잡혀져 있지 않았고 곧바로 보스톤으로 내려가 존 코튼의 회중교회와 코튼매더 일가의 발자취를 살펴볼 예정이었으나 스프링필드제일장로교회의 김기만장로의 권유로 윌리암스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스프링필드에서 91N를 타고 프리웨이를 2시간을 달리니 산길 소로로 접어들게 된다. 시간여를 더 가니 윌리암스대학이 있는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첩첩산골에 이런 웅장한 대학이 있을 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곳에 처음 정착한 이민자들이 그들의 자녀 다섯을 위해 보스턴에서 2명의 교사를 채용하여 시작한 것이 학교의 기원이다. 미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마을안에 지어져 학교와 개인집들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매번 놀라는 것은 대학이 들어서 있는 마을마다 웅장한 교회들이 첨탑을 자랑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서있다는 것이다.

윌리암스대학안에도 톰슨 교회당(Thompson Memorial Chapel)이 장대하게 세워져 있었다. 리치필드대각성운동은 이 시골구석까지 전해져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도하는 일들이 잦아졌는데 한번은 다섯명의 학생들이 강변에서 기도하다가 갑자기 뇌성이 치므로 근처의 건초더미(Haystacks)에서 기도하다 성령충만을 받게 되었다.

제임스 리차드(James Richards), 사무엘 밀즈(Samuel J. Mills), 하비 루미스(Harvey Loomis), 바이람 그린(Byram Green), 프랜시스 로빈스(Francis Robbins), 다섯 학생중 기도회를 인도하던 밀즈는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을 받아 “우리가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We can do this if we will)”고 하면서 해외 선교를 위해 기도했다.

이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검은 구름은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 이들은 여름 내내 그 숲 속에서 해외선교를 위해 기도했고, 이 기도회는 1807년 이듬 해 여름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이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해외선교를 위한 첫 기도모임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윌리암스 대학을 졸업한 후 주변의 예일, 프린스턴, 하버드 대학 신학교에 들어가 세계선교를 준비하였다. 그들의 요청으로 최초의 미국교회선교위원회(The 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for Foreign Mission)가 만들어지고, 2년 후에는 그들 중 세 명이 먼저 인도 선교사로 파송받아 떠난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이 선교 형제단을 통해 많은 대학생들이 선교에 동원되어 선교 불모지였던 아시아로 나가게 되었다. 학교안내지도를 보고 건초더미기도운동 기념탑을 찾아 뱅뱅 돌다가 검불더미같은 숲안에 버려진듯 서있는 기념탑을 발견하였다.

지구본을 이고 서 있는 작은 탑 하단에 다섯명의 이름이 적혀있는 검소한 기념비였다. 그러나 기념비가 세워진 이래 무수한 선교헌신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세계선교를 위해 자신을 불사르기로 결심한다하니 대단한 선교성지가 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