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가나 조직 그리고 단체 등은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해서 이끌려 가는 것 갔습니다. 따라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리더는 자기가 맡은 조직이나 단체를 발전 성장시키지만, 연약한 지도자는 조직을 와해시킬 수 밖 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 조직이며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인 목사는 교회라는 조직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책임진 담임 목회자의 건강하고 건전한 지도력에 의해서 발전하던지 퇴보할 수 밖 에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각종 종교적 바탕을 가진 타 종교로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고 때로는 시련을 당해 왔습니다.

또한 한국인의 심성 속에는 기독교와는 다른 샤머니즘(Shamanism)적인 요소가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나이가 많은 교인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기독교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하여 샤머니즘(Shamanism)적인 것을 배격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조심스럽게 선별하여 그러한 욕구를 기독교속에 받아들임으로서 한국의 기독교가 대중과 가까워 질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교수는 <한국인과 기독교>에서 “조상숭배 같은 전통에 대하여 기독교가 맹렬한 반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는 불교 모럴을 강화하는데 일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럼으로써 전통적인 사회와 극렬한 대립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로 말미암아 한국교회는 넓은 시민성을 잃어 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한국국운의 상승기류 속에 경제가 많이 신장이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가 양적으로나 외형적으로 지난 수년간 놀랍게 성장하였습니다.

이제 기독교 선교 120주년이 지난 한국교회는 더욱 성장되기를 바라고 있으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한국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맡았던 한국인들의 욕구인 배고파서 밥 먹는 일이나, 병을 고쳐야 하는 아쉬운 일 들이 한국 사회의 경제적 신장으로 인하여 국가나 사회가 그 책임을 맡게 됐습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이들을 붙잡기 위하여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나 교회 건물을 교인들 구미에 맞게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각종 세미나와 집회를 구상하면서 종교적인 색채를 가미한 세속주의 적인 이벤트성 집회를 구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구상과 계획은 대부분 교회 성장이 곧 교회 화려한 꾸밈이나 양적인 증가 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성장이란 수량적인 증가나 외형적인 성장은 그 의미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내적 혹은 질적으로 성장하여 영혼구원과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참되게 살아가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인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마태 28:20)’ 는 말씀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참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생활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을 통하여 참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숙되고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니라(사 2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