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아마존 서점 최고의 과학책으로 선정된 스티브 존슨의 <이머전스emergence>라는 책을 보면 아프리카에 사는 버섯 흰개미는 4미터나 되는 탑 모양의 집을 만든답니다. 4센티미터가 아니라, 4미터입니다. 그냥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온도 조절장치까지 있고, 애벌레에게 먹일 버섯을 기르는 방도 있답니다. 대단하지요? 물론 개미 한두 마리의 작품이 아니라 개미집단이 달라붙어서 만든 겁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말이 있듯이, 한 마리 한 마리의 능력은 보잘 것 없지만, 수많은 개미가 모이면 이런 엄청난 일도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야말로 전도서 4장12절의 말씀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에 딱 맞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협력, 협동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것도 바로 공동체의 강력함을 나타내주시는 메시지로 받아들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완벽하게 한 몸을 이루시고, 서로의 존재가 구별되지 않으니, 가장 강력한 사랑의 존재인 동시에, 사랑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랑은 ‘너와 나’라고 하는 두 개의 존재가 아니라,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하나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은 이런 공동체성을 보여주고 계신데, 그 모습을 인간에게도 심어놓으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로 따로 만드시지 않고, 남자에게서 여자를 만드시고, 그 다음부터는 여자에게서 남자가 나게 하셨습니다.

왜 굳이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을까요? 온전히 하나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이지만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보고 처음 한 고백 ‘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말은 한 마리도 하면 ‘너는 곧 나다’라는 의미입니다. 창2:24절에서 부부의 의미는 바로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부부만 하나입니까 ? 우리 한 민족의 힘은 바로 ‘하나된 민족’입니다. 같은 혈통이라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자랑이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같은 정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강력함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은 그런 정서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2세 자매 한분이 간증을 하다가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눈물을 글썽이는 겁니다.

부모님이라는 단어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저 ‘눈물’입니다. 한국 부모님들은 철저히 자식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우리는 울기부터 합니다. 1998년 NFL에서 MVP를 받았던 하인즈 워드도 중학교 시절에 절대적인 희생의 어머니를 보고 “내가 어머니 눈에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운동을 해서 오늘의 영광에 이르렀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국 부모들의 못 말리는 자식 사랑이 지나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지나칠 정도의 자식 사랑이, 교육열로 이어져 오늘 세계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데는 모두 다 동감하실 겁니다. 부모와 자식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들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베냐민을 붙잡아놓겠다고 형제들에게 말하자. 유대가 요셉에게 “아버지의 생명이 베냐민의 생명과 하나로 묶여 있으니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말에서처럼, 자녀의 생명은 부모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강력한 힘이 되어 자식을 돌보고, 양육합니다. 부모의 사랑의 힘 그것은 자식과 하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보잘 것 없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강력한 줄 아십니까?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와 하나가 되시기를 자청하셨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인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죄는 없으시지만, 흠 없으신 하나님께서 죄인 인간의 몸을 입으셔서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지실만큼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강력한 것입니다.

하나됨은 이렇게 강력한 힘을 나타냅니다. 하나 되었기에 돕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 되었기에 서로를 아끼는 것은 자동적입니다. 도울 일이 있으면 묻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하는 겁니다. 왜 다툽니까? 하나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나 나라 간에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전쟁이 그칠 날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크리스천은 오히려 더욱 싸워야 합니다. 이 세상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어두움의 권세와의 싸움이기에, 사랑을 없이하려는 사탄과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왜 다툼이 있습니까? 사랑이 없어서입니다. 성격차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사랑이 없어서 싸우는 겁니다. 요사이는 이혼하면서, 왜 그러느냐고 하면, 당당하게 “사랑이 없어서요”한답니다. 그건 자랑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겁니다. 목숨보다 귀한 자식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셨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도 계신데, 짧거나 길거나 한 세월을 함께 한 부부가 이혼하면서 “사랑이 없어서요”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깎아 내리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제 다시 사랑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협력의 힘을 믿읍시다. 사랑하면 협력합니다. 서로 도우면 자연히 서로가 행복합니다. 못할 일이 없습니다. 개미도 4미터짜리 집을 짓는데,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협력하면 엄청난 사랑에너지를 만들게 됩니다. 사랑에너지는 가정을 행복동산으로 만들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