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행동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스스로를 대속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나의 죗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죄와 사망에 눌려 있던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생명 되신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귀신 들린 딸이 있던 가나안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자신을 개와 같이 취급하는 상처 주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과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보시고 여인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일들은 많이 있지만 그것을 이기고 예수님과 진실하게 교제한 사람들은 모두 생명을 누렸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하셨습니다. 그 때 마르다는 열심히 일하며 자신이 프로그램화 한 기쁨에 충성했지만 마리아는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분과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결국 마르다는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대로 안 되었다고 화를 내게 되고, 반면에 마리아는 요한복음 12장에서 비싼 향유를 드리는 헌신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진실한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뭐가 힘들겠습니까? 이렇게 먼저 예수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통해 열매 맺는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 나와 무언가를 하는 것(Doing)보다 누군가가 되는 것(Being)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도 일을 많이 하기로 소문났습니다. 종종 신앙생활에서도 Being보다 Doing을 더 중요시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열심히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결코 마르다의 열심 있는 봉사를 책망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타난 마르다의 봉사,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하고자 하는 일은 아름다우며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었습니다. 결코 마르다의 봉사를 평가 절하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이 전부가 아닙니다. 일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서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교제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교제보다 일에 빠진 마르다의 ‘분주한’ 마음 상태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분주하다’는 말은 마음이 갈려 찢겨 있고 어수선해져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르다는 처음에는 좋은 목적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일을 하다가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다 보니 그 일 때문에 결국은 동생에게, 심지어는 주님께 불평하고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십 세기 초 구세군의 전도자인 사무엘 로건 블랭글(Samuel L. Brengle)은 사역을 할 때 가 장 큰 유혹이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전에 그리스도를 위해 무언가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지 않고도 일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일을 시키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교제를 위해 부르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일보다 우리의 마음을 먼저 보십니다. 나는 언제가 가장 기쁩니까? 열심히 일해서 내가 명예를 얻고, 칭찬을 얻고, 출세한 때입니까?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고 예수님과 교제할 때가 최고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