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에게 클라라가 가곡의 샘터였다면 쇼팡에게는 조르주 상드가 화려한 피아노 녹턴의 시원(始原)이다. 쇼팡은 폴란드인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다. 당시는 베를리오즈, 롯시니. 리스트, 슈만, 파가니니. 멘델스존등 기라성같은 작곡가들이나 연주가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던 때였다.

그때 파리 사교계에는 살롱음악이라는 장르가 유행하였는데 마리 다굴(Marie d'Agoult) 백작 부인이 연 파티에서 쇼팽은 당시 유명한 여류 소설가인 조르주 상드를 만났고 그의 작곡 인생은 이때부터 빛이 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상드를 만나기전부터 쇼팡은 피아노 연주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슈만이 손가락부상으로 연주가의 길을 포기했던 것에 비하면 운이 좋았던 것이다.

쇼팡의 재능은 모차르트에 비견될 정도의 천재성을 가졌던바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하여 7살 때 이미 두 개의 폴로네이즈를 작곡하여 여덟살때는 독주회를 가졌을 정도였다. 쇼팡과 조루즈 상드와의 첫만남은 기괴한 것이었다. 그녀는 남장을 하고 있었으며 그걸 본 쇼팽은 '꼴불견'이라고 까지 했을 정도였다. 상드와 만나기전 몇 번의 연애에 실패한 쇼팡이 지극히 연약하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그녀는 끊임없이 염문(艶聞)을 피우고 다니는 활달한 여성이었다. 쇼팽의 나약함에 이끌린 그녀는 모성본능에 자극되어 리스트에게 쇼팽을 만나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이와같은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쇼팡도 백기를 든다. 그러나 정열의 여인을 감당하지 못한 쇼팡은 중병에 걸려 마조르카 섬으로 요양을 떠나 상드의 지극정성의 간호를 받는다. 이때 그는 ‘빗방울 전주곡’ ‘폴로네즈 c단조’ ‘폴로네즈 a 장조’ '작품 40', '발라드 F장조‘ 그리고 ’작품38‘을 썼다. 상드는 정염(情炎)에 불타는 여인이었으나 쇼팡을 만난 이후에는 한 남자에게 헌신하는 요조숙녀가 되었던 것이다. 그만큼 상드에게 있어 쇼팡은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어느땐가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 불렀던 것처럼 그녀 또한 쇼팡을 ‘그는 나의 주인’이라 고백했을 정도였지만 또 반면에 점차 쇄약해져가는 그를 마치 어린아이처럼 다루는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쇼팡은 말년에 상드와 사소한 의견차로 결별하게 되고 1849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슈만에게 클라라가 있고 쇼팡에게 조르주 상드가 있는 것처럼 오늘날의 재기 발랄한 예술인들에게도 이러한 아름다운 사랑의 반려자나 동반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배우 김혜수가 평범한 배우 유해진을 연인으로 삼았다 하니 클라라나 상드처럼 지고지순한 배려와 변치않는 관심으로 사랑을 키워 가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