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씨엠(CCM) 애호가들에게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귀로만 듣고 느끼던 ‘본고장’의 그것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을 날카롭게 가르며 주인공 위로 떨어지는 스포트라이트, 그 위를 장식하는 붉고 푸른 조명들의 향연, 서로의 열기를 타고 폭발하는 팬들의 에너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주인공의 퍼포먼스. 더이상 약간의 ‘미안함’으로 세상의 그것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도 되는,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는 그런 기회다.

29일 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미국 가스펠의 거장 커크 프랭클린(Kirk Franklin·사진) 의 첫 한국 공연이 10분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표를 구하려는 팬들의 행렬은 줄어들 줄 몰랐다.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표정들 사이로, 희미하지만 뚜렷이 어린 ‘굶주림’. 소극장 콘서트가 대부분인 국내 씨씨엠계에서, 팬들은 배가 고팠던 것일까. 너나 할 것 없이 콘서트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씨씨엠의 스타들도 어김없이 이곳을 찾았다.

주인공을 보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미식가들은 본래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법. 음식이 늦다고 채근하거나 메인디쉬 때문에 애피타이저를 거르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그 모든 과정 자체가 하나의 요리요 문화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니정의 섹소폰, 토미키타의 록 사운드, 헤리티지의 소울, 송정미의 영성이 차례로 진한 흔적을 남기며 무대를 점령해 갔다. 그 울림이 크면 클수록 팬들은 주인공의 무대가 훨씬 강력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물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도저히 한 사람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마치 몇 사람의 에너지가 하나로 응축돼 뿜어지는 듯한 그의 무대는 지금까지 들었던 그의 명성을 그대로 증명해보였다. 그가 왜 가스펠의 거장인지, 왜 한국 블랙가스펠의 선두주자인 헤리티지가 자신들을 가리켜 ‘프랭클린 키즈’(Franklin Kids)라고까지 하는지를 그는 이날 단 한 번의 무대를 통해 입증했다.

그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본 린온미(Lean on me)의 뮤직비디오로부터 기자는 그것이 음악의 완성도와 팝의 대중성, 그리고 ‘메시지’라는 씨씨엠의 특수성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시지에만 무게를 둔 나머지 음악적인 면을 소홀이 한 것도, 가사로부터 전해지는 감동 없이 그저 ‘멜로디’만 들렸던 것도 아니었다. 가슴을 때리는 흑인들의 웅장한 목소리와 은은하게 귓가를 감도는 가스펠의 멜로디, 그리고 그것을 어색하지 않게 담아낸 흑백의 스크린은 ‘I'm here. You don't have to worry. I can see your tears. Here's my shoulder you can lean on me’(내가 여기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의 눈물을 볼 수 있어요. 여기 내 어깨에 기대요.)라는 가사를 더욱 깊이 가슴에 새겼다.

이 감동을 간직한 팬이라면 이날 그가 린온미를 열창하며 전해준 전율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돌아서는 발걸음은 아쉽고 또 아쉽다. 마이클 W. 스미스(2005), 스티브 커티스 채프먼(2006), 힐송과 아발론(2008) 등 해외에서 온 ‘거장’들의 공연 후에는 항상 그랬다. 그리고 그 아쉬움에는 또 다른 하나가 짙게 배어 있다. 한국의 씨씨엠 사역자들에게선 그와 같은 공연을 아직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여전히 소극장의 ‘풋풋함’에만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아쉬움이다. 글쎄, 언제쯤 팬들이 줄을 서고, 몇만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공연장에 국내 사역자가 당당히 무대에 오르는,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을까.

커크 프랭클린이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Do you wanna revolution?”(그의 곡 ‘Revolution’의 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