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들 앞에서 이 사람(예수님)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며 손을 씻었던 빌라도. 그러나 빌라도는 그의 생각대로 그 피 값에 대하여 무죄하지 않았다. 수많은 세대를 지나오면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암송한다. 역사의 평가는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언젠가 LA 한인 교계가 나누어지며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을 때의 모습이 눈앞에 겹쳐진다. 저 (소득 없는) 싸움에 끼어들지 않아야겠다. 갈등과 문제를 떠나 조용히 목회에 전념하리라고 생각하며 빌라도처럼 손을 씻는 내 모습이 보인다. 싸움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요, 내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아닌 듯 하였다. 빌라도도 이것은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이요, 다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빌라도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라며 손을 씻었다. 그러나 그와 상관이 없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책임을 져야 했던 문제였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함을 알았다. 빌라도의 아내는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하며 사람을 보내어 부탁했다. 빌라도는 마지막 판결하는 자리에서 그 판결을 군중에게 넘겼다. 책임에서 발뺌을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는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결단을 내린 것이다. 빌라도는 책임 있게 결단해야 하는 자리에서 그는 그 책임을 떠맡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떠맡지 않아도 되는 죄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으셨다. 빌라도는 책임 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책임을 떠맡지 않은 사람의 대표이다.

어느 국가든 어느 교회든 문제와 갈등이 없는 조직은 없다. 이때에 이것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손을 씻는다고 (조용히 그 문제를 떠난다고) 그 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골치 아픈 문제를 떠나 편안해 진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고고하게 도도하게 진흙탕 싸움을 싸우는 자를 손가락질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자리는 빌라도의 자리임에 분명하다. 허물과 부족, 갈등과 다툼의 자리에서 그 책임을 지고자 했던 느헤미야도, 다니엘도, 그리고 예수님도 복된 인생이 되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리에서 그 책임을 지지 못하는 모습이 바로 빌라도의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나님이 맡겨두신 (가정) 교회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서 손을 씻으며 무죄하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