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인 것 같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주인공 키딩 선생님이란 괴짜 선생님이, 오직 공부밖에 모르는 사립 고등학교에 와서 학생들의 메마른 아이들의 정서를 깨우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하루는 화창한 오후에 교실에서 수업하지 말고 학교 정원으로 나가자는 겁니다. “너희들 졸업반인데 학교 정원의 잔디를 맨발로 밟아 봤니 ?” 그러면서 선생님이 먼저 맨발로 잔디를 밟으면서 아이들도 해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 둘, 3년 동안 처음으로 학교 잔디를 밟으며 좋아합니다. 그중에 한 아이는 나무에 기대고, 팔짱을 낀 채 동참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너도 한번 해보지 그러니?”그러자 그 남자아이가 그럴싸한 대답을 합니다. “저는 지금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즐기고 있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만이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그리고 내 신앙과 마음을 생각해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유의 진정한 의미일 겁니다.

7월 4일은 미국 독립기념일이었습니다. 독립이란 말은 우리 한국 사람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어입니다. 다른 나라, 일본의 속박에 있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립, 이 말은 다른 말로는 자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말에는 자유라는 단어 하나이지만, 영어로는 freedom 과 liberty 가 있습니다. freedom 은 단순히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면, liberty는 조금 더 적극적인 의미로, 내가 속박에 있든지 풀어졌던지 내 안의 자유는 침범할 수 없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대우해도 그것에 영향 받지 않은 liberty의 자유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돌아가실 때, 그를 조롱하고 침 뱉고, 때리고, 못 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힘이 없으셔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뒤의 영광을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온 인류의 해방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화내고, 반응을 보이는 것은 큰 기쁨이 부족해서입니다. 천국을 향한 소망은 우리가 죽으면 가게 되는 하늘나라 정도가 아닙니다. 천국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요동치는 바람과 파도에 끄덕하지 않을 믿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항복을 싫어합니다. 항복하면 자유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에 무척이나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럴 것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항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정복당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대단해서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 항복한 종 된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러셨습니다. 누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라. 이것은 로마 군병들이 행군을 하다가, 피 정복민을 아무나 붙잡고 무거운 군장을 지게 하니까, 피 정복민들이 항의를 해서, 로마정부에서 거리를 법적으로 정한 것입니다. 5리까지는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10리까지라도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대라십니다. 속옷 달라면 겉옷도 주라십니다. 속옷을 누가 더럽게 달라고 하나 ? 그것이 아니라, 겉옷은 일교차가 심한 이스라엘에서는 옷일 뿐만 아니라, 밤에 이불역할을 하는 생명과도 직관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생명과 연관되는 겉옷도 주라십니다. 이 말씀대로 했다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남아나는 것이 없겠다고 속으로 생각하실 겁니다. 이 말씀은 ‘덜 하려고 하지 말고 더하려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딱 내게 관계된 일만 내게 주어진 것만큼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더하려고 해야 합니다. 왜 자존심을 내세우고 다툽니까? 덜 하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이정도 했으면 당신이 이 정도는 해줘야지” 따지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직장에서의 생리를 보면, 월급만큼만 일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랍니다. 그런데, 월급만큼도 일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답니다. 나폴레온 힐이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이라는 책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한 가지를 계속 강조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더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월급을 생각하고, 누가 알아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 이상의 충성을 하는 사람들이더랍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서로 더하려고 해보십시오.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인 내가 이 정도 했으면, 장로인 내가 이 정도 했으면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누가 하던지 안하던지, 믿음대로, 말씀대로 산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인데, 지옥이 지옥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지옥에 가면 밥숟가락이 길어서 밥을 뜨면 내 입에 도저히 넣을 수가 없답니다. 그런데, 서로 자기 입에만 넣으려고 하니 아무도 밥을 못 먹더랍니다. 천국에 갔더니, 천국도 밥숟가락이 길더랍니다. 그런데, 천국 시민들은 서로 먹여주기 때문에 아무도 굶는 사람이 없답니다.

만들어낸 이야기이지만, 의미가 깊지 않습니까? 천국 시민으로 살 사람은 더 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부터 천국시민으로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변화시켜 나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