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그마한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극무대. 무대를 꾸미고 조명을 비추고 간간히 목소리 출연도 하면서 전체적인 연출도 하는 그야말로 1인 10역을 소화하느라 바쁜 사람이 있다.

한국의 공연문화에 비하면 20~30년 전 수준인 열악한 미주 한인사회에서 그의 고군분투는 울림 없는 메아리 같지만, 다채로운 문화 공연을 통한 선교에 대한 비전은 누구보다 확고했다. 바로 베데스다신학대에서 뮤지컬을 가르치고 있는 조재현 교수.

한국에서 100여 편의 연극과 뮤지컬을 연출·기획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가 돌연 미국에 온 것은 배움에 대한 열망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믿는다.

“원래 동부지역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러나 기도 가운데 서부 L.A로 오게 됐고 오자마자 시장조사부터 시작했습니다. 문화 공연이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한 이곳에 왜 보내셨는지 처음엔 몰랐죠.”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계기도 바로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 일종의 특수 분야인 문화 관련 일은 전문가가 아니면 시도조차 힘들다. 재능도 있고 높은 전문지식을 가진 일꾼들이 많지만 수년전에 이민을 온 탓에 현재의 문화수준과도 동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교회잖아요. 교회에 있는 숨은 일꾼들을 찾아내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하던 것에 비하면 1/10도 미치지 못하는데...공연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첫 공연이 크리스천 모노드라마 ‘아이야 이제 웃어보렴’ 이란 연극이다. 자폐증 딸을 가진 엄마의 이야기로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폐증인 딸에게서도 희망을 되찾게 되는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한 집 건너면 하나씩 자폐증이나 장애인을 둔 가정이 많아요. 우리 사회의 이면에는 고통과 절망 가운데 사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들에게 필요한 손길은 무엇보다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들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죠.”

그가 준비하는 또 다른 작품은 소외된 어르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실버연극(하늘꽃-대본:조재현)이다. “공연 때문에 교회들을 다니다 보니 작은교회도 가 보게 되었는데...연로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수고하고 이젠 자식들의 뒤편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계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요.”

우리 사회 이면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하나님을 찾게 되는 이유가 되고, 일상에 대한 놓치기 쉬운 감사를 되찾게 해준다. 이런 소통과 깨달음, 감동과 치유를 문화라는 컨텐츠를 활용해 극대화할 수 있다는게 조재현 교수의 생각이다.

“교회에서 더 관심을 가지고 문화 공연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 보다 더 필요한건 목회자님들, 앞으로 목회자가 될 신학생들이 문화 컨텐츠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죠. 이 분야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 함께 기대하면서 계획하고 일하고 싶습니다.”

연극이 아니면 죽을 것 같았고, 연극이 아니면 할 줄 아는게 없었다. 연극 때문에 성공도 해보았고 연극 때문에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었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과 달란트를 주신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조재현 교수는 그분의 뜻하심이 바로 비전이 되었다.

<조재현 교수>
용인대 연극학과 세종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다. 극단 가변 기획실 실장, 한국연극협회 공연기획단장, 발렌타인 극장장, 스타트리엔터테인먼트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부천만화축제 개막식’, 가족뮤지컬 ‘신데렐라’, 크리스마스 뮤지컬 ‘복실이’, ‘민들레를 사랑한 리틀맘 수정이’ 등 50여 편을 연출했으며 ‘꼬마마녀 위니’, ‘디지털 에덴동산’, ‘발칙한 미망인’, ‘삼류배우’, ‘장자와 나비’ 등 50여 편의 공연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