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 뉴저지 지부에서 개최한 윤동주 문학제 ‘아름다운 윤동주’가 6월 30일 오전 11시 뉴저지초대교회 본당에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 씨와 문학평론가 유성호 씨가 강연자로 초청됐으며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 박영우 대표가 참가하기도 했다. 본지는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 뉴저지 지부 대표 김은자 시인 외 위 3인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문학제가 뉴저지에서 열린 이유는?
박영우 대표: 사실 윤동주 기념사업이 25년 전부터 필라를 중심으로 워싱턴 버지니아의 의사들이 주축이 되서 연변도 방문하고 윤동주 모교에 장학금도 주고 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고향이기도 해서 뉴저지에서 열렸다. 그런데 50개주 어느 도시에서도 할 수 있다. 필라에서도 할 수 있다.

영국은 동네마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를 읽는다. 그렇게 문학적인 배경이 깊은 나라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훌륭한 문인을 기리고 있다. 우리도 같은 취지로 매년 동포들과 함께 문학제를 연다.

-왜 윤동주인가?
유성호 평론가: 윤동주 시인이 가진 여러 내용 중 자기성찰, 공동체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 부당한 힘에 대해 저항 그리고 이민 사회에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과의 경험적인 유사성 등이다. 또한 윤동주 시인은 한국적인 시인이라기보다 인류 보편적인 사상과 접촉점을 갖는 시인이다.

도종환 시인: 저도 개인적으로 윤동주 시인을 좋아한다. 강연할 때도 시와 삶을 인용한다.

순결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시인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에 깊이 아름답게 각인된 분이다. 그의 시적 정서가 국민들 정서에 깊이 박혀 있다. 그래서 일반 독자가 쉽게 이해한다.

박영우 대표: 윤동주가 시를 썼고 문학을 했으니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철학가나 정치가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2세들에게 한글을 익히고 보존하고 시를 익히는데 윤동주를 상징으로 할 때 교포 사회가 한민족의 언어를 더욱 아름답게 이어갈 것이다. 또한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뉴저지 지부에서 이번 문학제를 통해 기대하시는 바와 앞으로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김은자 대표: 해외 동포들에게 윤동주 정신을 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한글학교와 연결해 후세에게 알리는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

-문학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도종환 시인: 문학은 길이요, 등대요, 나침반이다. 시한테 물어보고 시가 가라는 길로 간다. 그러면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유성호 평론가: 인간의 다양한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이다. 또한 유한한 인간이 꿈을 꾸지만 실현되지 않을 때 꿈을 회복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을 회복해주는 역할도 한다. (편집자 주: 유성호 평론가는 강연에서 "시는 잃어버린 시간을 탈환해 그 순간 충만한 순간성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또한 나뭇잎에 맺힌 이슬이 말라 이슬의 흔적만 남을 때라도 좀 전에 이슬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문학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증명한다고 말했다. )

김은자 대표: 문학은 삶이고 생활이다.

박영우 대표: 삶의 열정이고 보람이다. (박 대표는 사비를 들여 윤동주의 문학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고 김은자 시인, 도종환 시인은 전했다.)

-문학의 필요성은?
도종환 시인: 어릴 때 읽은 소설 한권이 인생을 바꾸고 지난주에 읽은 시 한편이 사람을 달리 보게 한다.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계관에 아름다운 영향을 미친다.

어려서 좋은 문학 작품을 많이 읽게 하면 아름다운 심성을 가꾸게 되고 폭넓은 세계관을 얻게 된다. 살면서도 새로운 문학작품을 읽을 때마다 세계관이 풍부해진다.

영혼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풍부한 정신세계를 갖는데 문학은 유익하다.

유성호 평론가: 문학은 삶의 다양한 모습 보여주며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보여준다. 문학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려는 사람이 자신이 사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도 문학은 가치 있다.

김은자 시인: 시는 자연이다. 미디어가 많이 들어와 현대의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는데 문학을 접하는 것은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다르지 않겠는가.

-크리스천에게 문학은 무엇인가?
유성호 평론가: 좋은 문학은 종교적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정의에도 윤동주의 문학은 충분히 가치 있다.

물론 세속적. 비극적 문학도 있다. 크리스천은 거기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뒤에서 탄식하는 목소리가 드러난다. 문학은 경전이 아니다. 세속경전이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탄식하신다.

-21세기 크리스천에게 윤동주 문학이 주는 메시지는?
유성호 평론가: 종교의 궁극적 테마는 구원이다. 구원에 죄로부터의 구원, 자기 구원 두 가지가 있다면 윤동주는 전형적인 ‘자기 구원’을 말한다.

윤동주는 신에 대한 찬양을 쓴 적이 없다. 왜 신앙을 가졌는데 괴로울까...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 윤동주는 기질적으로 낙천적이라기보다는 사색적이다.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김으로서 구원받는다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다져가려는 전형적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