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민족복음화운동본부 부총재 및 총 강사단장이자 작은 교회 더 사랑하기 운동본부 대표회장이기도 한 인천새소망교회 김영남 목사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퀸즈한길교회(담임 박진수 목사)에서 인도했다.

김영남 목사가 담임하는 인천새소망교회 성도는 현재 700여 명. 그러나 1980년에 개척한 후 3년이 되기까지 7명을 넘기지 못했고 10년 동안 성도 수가 12명을 넘기지 못했던 그야말로 작은 교회였다.

거기에 돌보아야 할 부모님과 여동생이 여럿 있었다. 당장 생활고 때문에 다른 일을 찾지 않을 수 없었던 김 목사는 버스에서 물건 파는 장사를 했다. 그때 하루에 타고 내린 버스가 42대라고 한다.

목회가 너무 힘드니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면 눈물밖에 나지 않았다. 때로는 목회를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한 영혼이라도 나를 통해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붙들었다. 또한 그 귀한 일에 부족한 사람을 써주신 하나님께 감사해 울더라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러다 1992년 우연한 기회에 김 목사가 속한 교단의 전 총회장이었던 목회자가 김 목사에게 부흥회 강사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이도 출석하던 좀 큰 교회였다. 김 목사가 전한 가난한 목회, 힘들고 아픈 목회 이야기는 교회를 눈물 바다로 만들었다.

김 목사가 부흥회를 통해 알려지니 교인도 하나 둘 새로 왔다. 그러면서 교우 가운데 한 두 사람은 물질의 복을 받기도 했다. 바지락 장사를 하며 열심히 믿음생활 잘하던 여집사는 물질 축복을 크게 받아 헌금을 많이 했다. 12년간 지하실 교회로만 5번을 옮겨 다녔던 김 목사였는데 그 헌금이 큰 힘이 돼 지하실 교회에서 나와 200여 명 규모의 교회로 옮겼다. 3년 전에는 교인 수도 더 늘어 성전을 새로 지어 입당했다고 한다. 성전을 좋게 지어놓으니 교인이 더 늘었다.

작은 교회 돕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20여 년 전에는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 본부'라고 시작했다. 그러나 '살리기'라는 말을 쓰다 보니 '작은 교회가 죽었는가?'라는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기관의 취지가 '물질적인 도움'에 초점이 맞춰져 한 주 평균 30여 통의 물질적인 요청이 있을 정도였다.

후원회도 없는데다 김 목사의 교회도 작은 교회라 물질적으로 돕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돕지 못할 때는 마음에 큰 짐이 됐다. 그래서 10년 전부터는 작은 교회의 실상을 알려 작은 교회를 더 사랑하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취지로 '작은교회 더 사랑하기 운동 본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작은 교회 더 사랑하기 운동본부는 매년 8월 마지막 주간에 작은 교회 돕기 무료 세미나를 연다. 이 세미나에는 매년 200-300명의 목회자가 모이며 많이 모일 때는 500명까지도 모인다. 참여 목회자에게는 숙식을 지원하며 교통비도 일부 지원해준다.

또한 김 목사는 작은 교회를 더 사랑하기 위해 작은 교회 위주로 부흥회를 다닌다. 교회가 정말 어렵고 힘든 형편인데도 사례비를 건넬 때는 받기는 하되 사모에게 다시 돌려줬다.

그리고 작년에 김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인천새소망교회에서는 미자립교회 개척 수기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모두 다 1등 감이었지만 1등은 자녀를 잃으면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인천 시화 지역에서 목회하며'현대판 욥'이라는 작품을 낸 목회자가 차지했다. 특별상은 30년간 8명의 성도를 바라보며 섬 교회를 지키던 목회자에게 돌아갔다. 작년에 입상한 개척 수기는 여러 신문에 연재되며 한국 내에서 많이 다루어졌다고 한다.

김영남 목사는 "숫자가 적다고 성공하지 못한 목회라 할 수 없다."며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김영남 목사가 10여 년 전 작은 섬 부흥회를 갔다 만난 66세의 총각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다. 교회 전체 교인은 8명이었고 그 중 청년회장의 나이는 71세. 섬에 들어오던 때 성도는 30-40명이었다. 성도들이 하나 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지금 남은 8명까지 본향으로 돌아가는 날 은퇴한다는 이 사람, 이 목회자야말로 '목회 성공자'가 아니냐고 김영남 목사는 말한다.

스스로가 작은 교회 목회자로서 숱하게 울어 본 김영남 목사, 그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눈물을 알고 시름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알기 때문에 김 목사는 작은 교회를 사랑하고, 알기 때문에 '더 사랑하자' 외치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