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떤 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역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력 발전소를 설립할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가장 적당한 곳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곳은 양쪽에 골짜기가 있어 그곳을 막으면 훌륭한 저수지와 발전소를 만들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골짜기에 조그마한 도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 당국은 먼저 보상 계획을 세워놓고 그곳 주민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 반 후엔 이 도시는 수력발전소를 위한 댐 공사로 물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그 전에 이사를 하셔야 합니다.”

그런 편지를 받은 후, 그 도시는 점차 눈에 띄게 황폐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이사를 가지 않은 그곳 주민들은 벽에 칠이 벗겨져도 새로 페인트칠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시는 관리를 하지 않아 을씨년스럽게 변해갔습니다. 이제 그 도시는 도저히 떠날 수 없는 힘없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한 기자가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도저히 사람이 사는 도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왜 도시가 이처럼 형편없이 되도록 내 버려두었습니까?” 그러자 어느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미래가 없는 곳엔 현재를 사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확실한 미래가 없다면 현실은 무능력하게 변해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태해지고 모든 것이 방치되고 황폐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갖는 꿈은 우리의 사는 힘입니다. 그러기에 꿈은 생명나무와 같습니다. 그 꿈이 늦게 이루어져도 마음이 상하기 마련인데 아예 꿈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그 위대한 꿈’을 받아야 합니다. 꿈은 결코 망하게 하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고통 속에서도 어떤 절망 속에서도 살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살아가야 할 가치를 주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꿈은 언제나 하나님이 주십니다. 진정한 꿈은 생명나무와 같이 자라며, 진정한 꿈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사명을 감당하게 해주는 복된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교회는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다’라는 생각으로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위하여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차세대를 키우는 일, 북한을 비롯한 세계선교를 담당하는 일, 커뮤니티를 섬기는 일, 타락한 문화를 정화시키는 일, 위기에 처해 있는 가정들을 돌보며 회복시키는 일, 우리의 조국과 민족을 섬기는 일, 우리가 거주하는 미국을 섬기는 일...

하나님의 각별한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디아스포라로서 이민교회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습니다. 감당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쓰심에 대한 확신을 꿈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꿈으로서 미래를 설계해야 합니다. 교회가 꿈으로 미래를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꿈이 동력이 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