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목표를 가지고 있고, 괜찮은 환경과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암초를 만나서 포기해야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순간적인 실패가 바꿀 수 없는 결론은 아닙니다. 실패하는 것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닙니다. 성공의 이면에는 수많은 실패의 흔적과 교훈이 있습니다. 뛰어난 위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야구의 신화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데이브 루스는 714번째 의 홈런기록을 세웠을 때, 1,330개의 스트라이크 아웃의 기록도 세웠습니다. 성공은 실패를 전제로 해서 말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실패는 배우는 시간이요, 성장하고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에서 성공의 자리로 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말처럼, 생각처럼 안 되는 것이 인생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주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친구 나사로가 죽자 그의 무덤이 있는 베다니로 가십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나시고, 그녀들을 위로하십니다. 무엇보다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위로자이십니다. 우리의 상황과 형편을 알고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눈물은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고 마음의 번잡함을 없애줍니다. 그 눈물이 저와 여러분에게 흘러넘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의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마르다는 “주님, 이미 죽은 지 2일이 지나 벌써 냄새가 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가 아는 것처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가 가진 질문은 주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시겠다고 하시면서 정작 돌을 옮기는 것은 왜 사람들에게 시키셨는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에 비하면 돌 정도를 옮기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왜 굳이 사람에게 부탁하셨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주님이 하시지만 돌은 우리가 옮겨야 된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100% 다 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시고, 미미하지만 우리의 도움과 믿음과 순종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돌을 옮기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보기 원하시는 요청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돌은 우리가 옮겨야 된다는 메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부족하거나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기적을 만드시고, 이루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혹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옮기라고 말씀하시는 돌을 그대로 두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그래서 엄청난 기적의 문이 열리지 않아서 힘든 분은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자동문은 어느 정도 센서가 감지하는 부분까지 가야 문이 열립니다. 아무리 멀리서 문이 열리라고 명령하고 부탁해도 문은 그대로 있습니다. 나아가야 합니다. 시도해야 합니다. 몸을 움직여서, 믿음을 갖고 앞으로 갈 때, 자동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돌을 옮겨 놓아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돌을 옮기면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기적을 행하십니다.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러나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살리는 것은 주님의 몫입니다. 혹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실패의 쓰라린 상처에 갇혀서, 실패의 부담감과 두려움 때문에 그냥 서 있지는 않으신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놓여있는 돌을 옮기시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순종으로 우리를 가로막는 돌을 옮겨 놓으십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기적의 보게 될 것입니다. 돌을 옮기는 한 주간이 되고, 기적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