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꿈을 가지고 노력 하십시오 캔 두(Can do)를 믿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신호범 장로(베다니교회). 거리의 소년에서 전쟁 후 입양아로, 그리고 마침내 워싱턴 주 상원의원이 되기까지 신호범 장로의 간증집회가 열렸다.

은성교회(담임 황명길 목사)는 창립 16주년을 맞아 신호범 상원의원 초청 특별 간증집회를 7일부터 9일까지 은성교회 본당에서 개최했다. 첫째 날 신호범 장로는 ‘내 인생의 목적’이라는 주제로 어려운 순간마다 체험했던 살아계신 하나님, 목적이 이끌었던 삶, 꿈을 향해 노력했던 지난 삶을 간증했다.

1935년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한 신 장로는 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가로 보내졌다. 너무 가난했던 나머지 아버지가 키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사촌들과의 차별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출한 6세 어린이는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탔고, 그때부터 서울역 앞에서 구걸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6.25전쟁 발발. 피난길에 올랐던 소년은 유엔군 참전 소식을 듣고 미군들이 많다는 노량진으로 찾아가 구걸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미군이 이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막사로 데려가 깨끗이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 후 먹을 것을 주었다. 그때부터 미군들의 ‘하우스 보이’로 지냈다. 신 장로는 이 때 내밀어준 미군의 손이 하나님의 손길이었음을 확신했다.

먹을 것과 잘 곳이 생겼지만 외로움과 공허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소년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고 또 다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다. “네가 이렇게 울면 미국에 있는 나의 아들이 우는 것 같이 마음이 아프단다.”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던 한 병사. 바로 이 사람이 신 장로의 양아버지다.

16세 때부터 시작된 미국생활... 언어와 환경의 문제를 극복해 가며 청년이 되었다. 영장을 받고 훈련하던 시절 한 식당에서 인종차별을 당한다.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난 것.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고아라는 이유로, 이제는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을 차별 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다짐한다. ‘언젠가 나를 쫓아낸 당신을 위해 봉사할 날이 올 것’이라고. 신호범 장로는 30여년을 교수로 지내다 정치인이 된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목적과 꿈이 있어야 하고 꾸준히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신호범 장로는 75세 3선 상원의원으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바로 한인2세 정치인들을 양성하는 것이 그것이다. 신 장로는 “50개주에서 한인 2세 정치인이 1명씩만 나와도 50명이 된다”며 “앞으로 30년 안에 미국에서 한인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