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 뉴욕의 한인 횟집 앞에서 세계 최대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에서 산낙지 식용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PETA의 라이언 휠링 대변인은 “살아있는 낙지의 다리를 잘라 꿈틀거리는 것을 먹는 행위는 엄연한 동물 학대”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의 한인 식당 주인은 "어떻게 이런 시위가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주 당황해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각자 다른 양심의 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낙지회를 먹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있는 것이고, 한국 사람들에게 낙지는 그냥 아주 특별한 음식(?)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은혜의 시대인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것은 복음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은 당시의 문화적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약의 율법에 예수님의 십자가(복음)가 들어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다른 부분은 약화되거나 변형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약 시대에는 구약의 제사를 그대로 드리지 않습니다. 율법이 중요하게 여기는 절기도, 오늘날에는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성탄절’처럼 다른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에 강조되는 것이 ‘성령의 법’입니다(롬 8:2). 율법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양심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을 보면, 바울은 음식의 문제에 있어서 ‘의심하고 먹는 자’는 죄가 있지만, '믿음으로 먹는 자'는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음식은 우상의 제물로 드려졌던 음식을 말하는데, 먹는 음식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먹는 사람의 믿음과 신앙 양심에 따라서 죄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않은 것은 다 죄니라’(롬 15:23).

그러므로 산낙지를 먹는 것이 죄인지 아닌지,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죄인지 아닌지는 각자의 양심에 맡길 문제입니다. 더욱이 한국적 상황에서 신앙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술'이나 '담배'의 문제, 나아가서 경건생활인 ‘기도생활’과 ‘말씀생활’도 성령이 인도하시는 양심의 법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로 다른 사람을 정죄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양심에 비추어 볼 때, ‘~을 하거나’ 혹은 ‘~을 하지 않음’에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거나 거리끼는 부분이 있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해야 할 것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성령의 법은 가장 성숙한 신앙인들에게 적용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신앙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보통 사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입니다. 또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보다 더 안타까워하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참회록은 형편없는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성자라 칭함을 받는 사람이 쓰는 것입니다. 성령의 법에 명확한 경계선은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상황’과 비교하면서 안심하거나, 반대로 못한다고 정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마음에서 탄식하는 성령의 외침에 귀 기울일 뿐입니다(롬 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