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교리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 처음 믿는 사람들이 가장 큰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그 대목입니다. 기도할 때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또 어떤 이는 성령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게 어디 초신자뿐이겠습니까? 저명한 신학자들까지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와 오묘를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담을 수 없고 다만 그 한 부분만 접촉하게 되듯이 삼위일체 하나님도 우리 인간의 작은 두뇌로는 겨우 그 작은 부분만 알 뿐입니다.

실상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종교들도 적지 않습니다. 유대교가 그렇고 유니테리안들이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그렇고 안식교도 그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교리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둘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적 구원이니까요. 만약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포기하면 그건 한 마디로 딱 잘라서 기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말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아들로서의 하나님,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의 세 위격이 그 본체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면서도 일체삼위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세 분이 한 분(Three in One), 한 분이 세 분(One in Three)이지요.

여기까지 읽으면 독자 여러분의 골치가 좀 아프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런 복잡한 것 따지지 말고 단순하게 믿어 두는 것이 제일 속편한 일이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쉽게 설명한 것이 세 잎 클로버입니다. 최초의 아일랜드 선교사였던 패트릭은 그 당시 무지하기 짝이 없던 원주민들에게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는 클로버 잎을 들어 보이면서 한 잎은 성부, 다른 잎은 성자, 세 번째 잎은 성령이라고 실물교육을 해서 효과를 보았답니다. 물론 줄기는 머리 하나님(Godhead) 혹은 본체 하나님이라고 했겠지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면 큰 은혜를 받는 대목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에 계셔서 그 분을 직접 만나 뵌 사람이 없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 위에 오셔서 사셨기 때문에 열두 사도들을 비롯하여 그 때 사람들이 직접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그 음성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요일1:1).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의 몸 안으로 들어오셔서 속사람을 가득 채워 주시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이라고 하지요. 좀 줄여서 반복한다면 성부는 하늘에 계시고, 성자는 땅 위에 계시고, 성령은 우리 몸 안에 계시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신경질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도 많이 받고 간증도 엄청나던데 무슨 일이 닥치면 신경질을 팍팍 냅니다. 그런 사람 볼 때마다 저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곤 합니다.

“주님, 저 사람의 신경 깊은 속까지 성령님으로 꽉꽉 차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