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잇딴 자살로 ‘베르테르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사후예방(postvention)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최근 연예인들과 전직 대통령 등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잇따른 자살로 자살예방 활동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로 큰 충격과 죄책감, 무력감과 수치감을 경험하고 있는 자살 유가족들을 보살피는 문제, 즉 사후예방에는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두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홈페이지에조차 주요사업 소개에서 사후예방은 자료가 많지 않다.

자살은 이미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다. ‘자살’이라는 개인적 행위가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아픔을 느끼게 하고 또 다른 자살로 이어지는 사회적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몇 년에 걸쳐 국가적인 자살예방 계획을 펼치겠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한 사람의 자살은 주변 가족과 친지, 동료 등 평균 6명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게 한다는 연구는 잘 알려져 있다.

사후예방은 자살자 가족 및 동료들이 자신들의 비탄감정을 극복하고 정상적으로 공동체에 복귀하게 하며, 추가 자살을 막는 ‘자살예방’ 활동이면서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를 막을 수 있는 하나의 축이 될 수 있다. 한국생명의전화는 이에 지난해 자살 유가족들을 돕는 핫라인을 개설했고, 사후예방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나섰다. WHO와 한국생명의전화 등의 자료를 중심으로 자살자 유가족들에게 나타나는 현상과 도움 방법을 알아본다.

즉각적인 반응: “왜?…”, “내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살로 인한 죽음은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있는 사별과는 달리 아무런 경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때문에 상실감과 슬픔이 격렬하고, 슬픔의 과정도 매우 복잡하며, 굉장히 많은 감정을 겪고 결코 찾지 못할 질문들을 하게 된다. 그중 공통적으로 맞게 되는 질문이 “왜 그가 자기 생명을 포기해야 했는가”다.

결국 유가족들을 답을 찾지 못한 채 자신만의 방식대로 상실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 어떤 스트레스를 준 사건이 방아쇠를 당기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수많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깔려 있지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퍼하면서도 수용의 과정으로 나가는 일이 중요하고, 슬픔의 과정을 거치면서 삶을 다시 완전하게 살아야겠다는 의식적인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 ‘왜?’라는 물음을 넘어 이 같은 길로 나가는 것은 모든 가족들에게 중요한 도전이다.

이들은 또 수백 번도 넘게 자문(自問)한다. “내가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잘못은 아닐까?”라고. 하지만 정답은 “아니오”다. 자살자들은 스트레스에 아주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은 죽음 이전에 감지되지 못한 여러 형태의 정신적 질병으로 고통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문가들조차 자살을 예견하는 데는 한계를 느끼고 있으므로, 가까이 있고 사랑하는 이라 할지라도 삶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점을 감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죽음 이전의 환경과 사건들을 검토하면서 “이렇게 했어야했는데, 이렇게 하면 안됐는데…” 하면서 자신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의 강렬함은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친척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면서 슬픔을 이기는 데 충분한 지원을 받는다. 또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고 치유를 경험한다. 주변에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을 주려 하기보다는, 그러한 질문을 정직하고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하면서 결코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사후예방의 원리 ‘동병상련’, ‘24시간 내 접촉’

사후예방의 목표는 첫째로 자살사건의 여파로 발생하는 생존자들의 고통을 최소화해 이들이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둘째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이 심리적인 상처를 치유 받고 다시 자살을 시도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과 같은 외상적 반응과 관련해 종합적인 교육 전략과 자문, 위기개입 등을 실시해야 한다.

사후예방은 가능하다면 비극이 있은 후 24시간 이내에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 사이에 자문과 네트워킹을 하면서 가능한 신속하게 반응해야 한다. 24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나누기 위해서이며, 이는 극적인 성격의 잘못된 정보가 급격히 퍼질 때 발생할 수 있는 히스테리와 싸우기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몇몇 사람들은 전문가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무척 갖고싶어 하겠지만, 대부분 생존자들은 저항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생존자들의 마음에 동병상련(同病相憐)해야 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하거나 극단적인 낙관주의, 진부한 상투어는 피해야 한다. 전문가로서 그들에게 다가간다면 항상 건강과 전반적인 정신건강 악화, 특히 자살위험에 대해 가능한 한 경계해야 한다. 또 자살자나 그로 인한 초조와 분노, 공포, 수치심과 죄책감 등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는 표출돼야 하지만, 자살 직후는 적당한 타이밍이 아니다.

일상생활로 돌아오게 하기까지 계속적 관계를…

상담자는 생존자들에게 끼치는 격변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지원 행동과 직접 행동의 균형을 맞추면서 4단계의 개입을 수행해야 한다. 먼저 공감 차원의 개입(empathy level intervention). 생존자들의 독특한 감정을 듣고 나누면서 마음속에 쌓인 속앓이를 언어화해 털어놓게 하는 단계다. 생존자들과 함께 있어줄 때 위기를 견딜 힘을 얻게 된다. 이어 촉진 차원의 개입(facilitation)으로, 생존자들의 고통을 지지해 주면서 내적 자원들을 활기 있게 증가시켜 주는 단계다. 수치심과 죄책감을 표현하고, 거기서부터 오는 억압감정과 압박감으로부터 놓임 받도록 촉진시킨다. 자살 사건을 수용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이후에는 확신 차원의 개입(assertive). 생존자들에게 보다 직접적인 언급이나 행위를 통해 자살을 받아들이고 정상적 복귀를 예비하는 단계다. 여기서는 자살자가 차지하는 자아의 내면을 자기 자신으로 교체하는 ‘자아 되살리기’, 거리감을 갖고 자살자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며 자살 사건이나 내용을 재배치해 새로운 의미를 찾는 ‘기억하기’를 시도한다. 마지막은 조정 차원의 개입(control)으로, 생존자들의 잔여 에너지를 강화해 스스로의 권리와 책임을 자각시켜 위기를 다스리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수치감이나 죄책감, 무의미성의 위협, 실패감을 극복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와 현실세계를 조화시키는 ‘관계 개선’, 공동체로의 복귀를 뜻하는 ‘재통합’ 등이 이뤄진다. 삶의 동기를 부여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 가치와 역할이 있음을 알린다.

안재환 씨에 이어 최진실 씨가 자살한 지난 2008년 10월, 자살자는 1,7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한 달 평균 자살자 1000여명에 비해 현저히 많은 수치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예수의 고난과 희생을 깊이 묵상하는 고난주간, 주변의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돌아보는 배려와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