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십자가 고난의 실천이 기독교인 삶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하는 점을 거의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십자가 정신의 심각성을 지닌 기독교보다는 오히려 안녕과 여흥을 선사하는 기독교의 이미지에 더욱 친숙한 것 같다. 필자는 이러한 십자가 신앙의 부재(不在)는 필연적으로 한국교회의 저하된 도덕성과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함의 요인이 되었다고 보면서, 그 근본적인 치유책은 희미해진 십자가 영성(Cross Spirituality)의 전통을 다시금 교회와 성도들의 삶속에 확립하는 길뿐이라고 본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함을 통해 십자가 영성의 모범을 보이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막 1:17)고 말씀하시고, 또 그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으라고 하셨다(마 16:24, 막 8:34, 눅 9:23).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거듭난 신자들은 본질상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제자로서의 정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정당한 크리스천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제자도(discipleship)의 덕목은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로 사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죽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좇아 좁고 협착한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포함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비장하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 시대가 찾아오자, 마침내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고, 고귀한 순교의 피로 얼룩진 초대교회의 역사는 실로 교회사의 황금시대였다. 이러한 순교적 각오와 결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죽음까지라도 함께 한다는 ‘십자가 자의식’(十字架 自意識)이 없이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루터(Martin Luther)는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에 반기를 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두는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러한 십자가 정신의 강조를 통해 허영과 위선과 교만에 부풀어 있던 중세교회를 예리하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는 값싼 은혜(costless grace)는 교회의 치명적인 적으로서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닫아버리는 것이라고 보았고, 값진 은혜(costly grace)는 제자로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나서는 신앙을 말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죽음을 통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좁은 길을 선택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십자가 영성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핵심이다.
요즈음 영성운동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가고 있는데, 나는 십자가 영성이야말로 복음적 성령론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핵심은 명백하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십자가의 능력이 가져다주는 거룩함의 능력에 있다. 사실상 신자 안에 거하는 죄는 원칙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이다(롬 6:6, 갈 2:20, 5:24, 6:14).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영적 사실을 깊이 신뢰하면서 이에 반하여 작용하는 어떠한 유혹도 의지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진지한 믿음과 결단이 바로 거룩한 삶의 동인(動因)이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십자가 영성이 복음의 필수요소라는 점을 신학적 그리고 실천적으로 강조해야만 한다. 강단에서의 설교는 물론, 교회의 모든 제자훈련과 영성 프로그램 속에 십자가 영성에 대한 메시지와 훈련을 더욱 강화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는 단호하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거룩함과 세계선교의 완수를 위해 힘 있게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함을 통해 십자가 영성의 모범을 보이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막 1:17)고 말씀하시고, 또 그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으라고 하셨다(마 16:24, 막 8:34, 눅 9:23).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거듭난 신자들은 본질상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제자로서의 정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정당한 크리스천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제자도(discipleship)의 덕목은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로 사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죽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좇아 좁고 협착한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포함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비장하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 시대가 찾아오자, 마침내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고, 고귀한 순교의 피로 얼룩진 초대교회의 역사는 실로 교회사의 황금시대였다. 이러한 순교적 각오와 결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죽음까지라도 함께 한다는 ‘십자가 자의식’(十字架 自意識)이 없이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루터(Martin Luther)는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에 반기를 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두는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러한 십자가 정신의 강조를 통해 허영과 위선과 교만에 부풀어 있던 중세교회를 예리하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는 값싼 은혜(costless grace)는 교회의 치명적인 적으로서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닫아버리는 것이라고 보았고, 값진 은혜(costly grace)는 제자로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나서는 신앙을 말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죽음을 통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좁은 길을 선택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십자가 영성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핵심이다.
요즈음 영성운동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가고 있는데, 나는 십자가 영성이야말로 복음적 성령론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핵심은 명백하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십자가의 능력이 가져다주는 거룩함의 능력에 있다. 사실상 신자 안에 거하는 죄는 원칙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이다(롬 6:6, 갈 2:20, 5:24, 6:14).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영적 사실을 깊이 신뢰하면서 이에 반하여 작용하는 어떠한 유혹도 의지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진지한 믿음과 결단이 바로 거룩한 삶의 동인(動因)이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는 십자가 영성이 복음의 필수요소라는 점을 신학적 그리고 실천적으로 강조해야만 한다. 강단에서의 설교는 물론, 교회의 모든 제자훈련과 영성 프로그램 속에 십자가 영성에 대한 메시지와 훈련을 더욱 강화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한국교회는 단호하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거룩함과 세계선교의 완수를 위해 힘 있게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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