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는 수많은 명작을 남겨서 유명합니다. 그 중 로마 바티칸의 시스틴 성당의 천정에 “천지창조”그림 입니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운차게 아담을 향해서 돌진하는 모습이 얼마나 속도감이 있는지 머리카락이 뒤로 날리는 듯이 보입니다. 또한 아담을 향해 내민 팔에는 모든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된 모습입니다. 이 모습에서 힘과 빠른 속도감이 느껴집니다. 반면에 아담은 교만한 자세로 뒤로 기대고 있습니다. 무게중심이 완전히 뒤쪽에 있습니다. 뭔가에 관심 없는 듯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화가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십니다. 사랑하면 빨리 움직이게 되어있고 사랑하면 속도가 붙게 되어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향해 달려간 분은 아버지였습니다. 나이가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였습니다. 사랑이 달려가게 만든 것입니다. 아버지의 시선과 마음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발걸음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과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의 발걸음은 다릅니다. 마음에 뜨거운 열정이 있는 사람의 발걸음과 타성에 젖은 식은 가슴의 사람의 발걸음은 다릅니다. 사랑하면, 밝고, 즐겁고 활동적인 모습의 발걸음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발걸음과 태도와 마음을 뒤바꾸어 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 때문에 인간에게 머리카락이 휘날리도록 달려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 사람은 발걸음이 달라집니다. 삶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삶의 속도는 훈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손가락 끝에는 미세한 간격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미세한 간격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달려오는 속도는 능히 덮칠 수 있는 속도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덮치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그 옆에서 기다리십니다. 상대의 능동적인 반응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미세한 간격을 상대가 메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덮치지 않습니다. 가볍게 안고 기다립니다. 마지막 힘을 주고 꽉 안는 것은 상대가 해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덮치듯이 안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올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내 앞에서 미세한 간격을 가지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면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인가? 작은 행동, 작은 몸짓을 통해 미세한 간격을 메우는 일입니다. 매사에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는 작은 몸짓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와 송아지를 먹고, 금가락지를 끼고 풍성함을 누린 비결이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철저하게 회복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면목이 없지만,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하늘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탕자인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미세한 간격을 메우는 작은 행동만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회복하는 길이 있습니다. 미세한 간격을 메우는 작은 몸짓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작은 몸짓이 큰 은혜를 가능케 하기 때문 입니다.

Jan, 17, 2010 , 목양 실 에서 김 병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