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언론회가 김정일 정권에 인권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자진 입북한 로버트 박과 관련, 14일 논평을 내고 “지금은 북한 인권을 위하여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라고 강조했다.
교회언론회는 이 논평에서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라며 “이 역사적 부름의 음성을 외면치 말라”고 밝혔다. 다음은 교회언론회 논평 전문.
지금은 북한 인권을 위하여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이다. 이 역사적 부름의 음성을 외면치 말라.
지난 12월 25일 성탄절 오후 5시 경에 한 젊은 선교사가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다.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얻기를 원하며, 정치범 수용소가 폐쇄되는 날까지 나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이는 숭고한 사랑의 정신과 위에서 부르신 거룩한 부름에 순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또 한명의 순교자가 되지 않을까를 심히 염려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걸고 행하는 이 일은, 어떤 정치·외교적 손익 계산으로, 또는 사상이나 종교적 다름으로 인하여 비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다만 목숨을 건 순결한 열망이 뜻을 이루기를 바란다. 이는 생명에 관한 일이며 민족을 위한 역사적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눅19:40) 비극적 환경, 북한의 비참한 인권개선의 문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실임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부끄러움을 안겨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이제 더 이상 ‘쉬쉬’해야 할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인권을 말하면 북한을 자극한다는 논리는 이미 폐기되어야 할 지난날의 낡은 정치적 수사 용어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극적 현실을 은폐하고, 자기 방어를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여겨 즐겨 사용하던 허사(虛辭)일뿐이다.
인권의 문제는 自國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말한다고 내정간섭이라고 할 수 없다. 인권은 세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이다. 천부적 인권을 어느 권력이나 그 누구라도 억제·제지할 권한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제 북한의 비참한 인권상황을 외면치 말아야 한다. 북한 인권을 위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의 요구는 북한의 권력 주체의 변경이나 정치 변화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환경 개선, 주민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북한의 도움 요구를 외면치 않고 힘써 도와주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교회의 순수하고 거룩한 인간애와 민족 사랑과 수고에 대하여 늘 실망스런 답을 해 왔다. 신앙의 자유는 눈속임에 불과한 것임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이란 이유 하나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10만 명의 사람들이 그 증거이다.
주민들을 억압하고 존속한 정권이 없다는 것이 세계 역사의 교훈임을 알 때에 북한의 인권개선은 결국 북한 정권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북한 지도자들이 주민들을 계속 억압하고 사지로 몰아간다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핏 소리를 신원해 주시리라는 것을 경고한다.
지난날 우리정부가 행한 북한 인권에 대한 정책은 너무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제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과 아울러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이다. 생명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이 역사적 부름의 음성을 외면치 말아야 한다. 1989년에 서독 교회가 동독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했던 것처럼, 교회 교회마다 10만 성직자와 1,000만의 성도들의 뜨거운 가슴, 가슴으로 북한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할 때이다.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역대하 6:36)
교회언론회는 이 논평에서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라며 “이 역사적 부름의 음성을 외면치 말라”고 밝혔다. 다음은 교회언론회 논평 전문.
지금은 북한 인권을 위하여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이다. 이 역사적 부름의 음성을 외면치 말라.
지난 12월 25일 성탄절 오후 5시 경에 한 젊은 선교사가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다.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얻기를 원하며, 정치범 수용소가 폐쇄되는 날까지 나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이는 숭고한 사랑의 정신과 위에서 부르신 거룩한 부름에 순응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또 한명의 순교자가 되지 않을까를 심히 염려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걸고 행하는 이 일은, 어떤 정치·외교적 손익 계산으로, 또는 사상이나 종교적 다름으로 인하여 비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다만 목숨을 건 순결한 열망이 뜻을 이루기를 바란다. 이는 생명에 관한 일이며 민족을 위한 역사적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눅19:40) 비극적 환경, 북한의 비참한 인권개선의 문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실임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부끄러움을 안겨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이제 더 이상 ‘쉬쉬’해야 할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의 인권을 말하면 북한을 자극한다는 논리는 이미 폐기되어야 할 지난날의 낡은 정치적 수사 용어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극적 현실을 은폐하고, 자기 방어를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여겨 즐겨 사용하던 허사(虛辭)일뿐이다.
인권의 문제는 自國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말한다고 내정간섭이라고 할 수 없다. 인권은 세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이다. 천부적 인권을 어느 권력이나 그 누구라도 억제·제지할 권한은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제 북한의 비참한 인권상황을 외면치 말아야 한다. 북한 인권을 위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의 요구는 북한의 권력 주체의 변경이나 정치 변화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환경 개선, 주민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북한의 도움 요구를 외면치 않고 힘써 도와주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교회의 순수하고 거룩한 인간애와 민족 사랑과 수고에 대하여 늘 실망스런 답을 해 왔다. 신앙의 자유는 눈속임에 불과한 것임이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이란 이유 하나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10만 명의 사람들이 그 증거이다.
주민들을 억압하고 존속한 정권이 없다는 것이 세계 역사의 교훈임을 알 때에 북한의 인권개선은 결국 북한 정권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북한 지도자들이 주민들을 계속 억압하고 사지로 몰아간다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핏 소리를 신원해 주시리라는 것을 경고한다.
지난날 우리정부가 행한 북한 인권에 대한 정책은 너무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제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과 아울러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는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이다. 생명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이 역사적 부름의 음성을 외면치 말아야 한다. 1989년에 서독 교회가 동독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했던 것처럼, 교회 교회마다 10만 성직자와 1,000만의 성도들의 뜨거운 가슴, 가슴으로 북한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할 때이다.
‘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역대하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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