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슬람화를 우려하는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슬람화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유엔인권 헌장은 인간의 자유 가운데 종교의 자유를 아주 중시한다. 모든 사람은 종교를 믿을 권리와 바꿀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자유 세계는 종교의 자유는 보편적인 가치임을 믿고 사회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종교에 관한한 절대적으로 자유를 보장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가지도록 교육도 하고 권면하지만 강제화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는 한 가족 중에서 종교가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화가 되면 이러한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이슬람에서 종교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집단의 선택이다. 이슬람은 유엔인권헌장을 서방 기독교 세계가 임의로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종교 자유는 기독교와 서방 계몽주의, 합리주의 사상의 결과라고 강하게 거부한다. 그래서 이슬람은 이슬람 인권헌장을 따로 만들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것을 가치관의 충돌이라고 정의한다.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이슬람은 종교는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사항이 아니라 가정과 국가가 하나의 종교로 통일되어야 하고, 그 종교는 반드시 이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슬람화되면 기독교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두번째 이슬람화 된 사회는 종교적 율법주의 사회가 된다. 이슬람화가 되면 개인의 생활이나 심지어 복장까지도 자유가 없다. 1979년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소위 이슬람 혁명을 일으켜 독재자 팔레비 왕을 몰아내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통치하는 시대였다. 여자들은 차도르가 의무화되고 립스틱이 금지되었고 남자들도 반소매를 입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종교적 율법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란 비행기를 타면 여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차도르를 써야 한다. 차도르는 이슬람 문화이지 우리 문화가 될 수 없다.
지금 이란의 청년들은 이슬람에 대한 강한 반발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외 언론들은 보도한다. 이란 대통령의 불법 선거를 가지고 아직도 데모가 일어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 동안의 이란 사회를 지배한 종교적 율법주의와 경제 실패에 대한 반발이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탈레반은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공포 정치를 하였다. 여자들이 직장에서 쫓겨 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자들은 화장을 못하고 강제로 차도르를 써야 한다. 간음하면 공개 처형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러한 공개처형으로 일 년에 수 백 명씩 죽는데, 이상하게도 간음의 경우 주로 여자들만 처형 당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여성들이 억울하게 많이 죽었다. 얼마 전 필리핀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근로 여성들을 구출해(?) 왔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극장도 술집도 없다. 여자들은 남자의 허락 없이는 외출의 자유도 없다.
이슬람화 된 사회는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실천하려고 한다. 그래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이 강한 국가에서는 샤리아를 강제로 형법화하려는데 대해 비무슬림들이 강력하게 반발해 둘 사이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슬람화 되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이슬람에서는 도적질하면 오른 손을 절단하는 형법이 있다. 일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것을 시행한다. 여자들에게도 할례를 한다. 그로 인한 여성 불구자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 여성인권단체들이 이것을 비판하자 이슬람 국가는 문화 간섭이라고 반발한다.
세번째 모든 것 위에 이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이슬람은 하나의 종교일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 위에 군림하는 총체적 시스템이다. 무함마드는 종교창설자이고 군사지도자이며 정치가이다.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불가능하다. 이슬람 국가의 왕이나 정치가(대통령)는 이슬람의 수호자, 전파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란에는 대통령 위에 종교 지도자가 있다. 이것은 정치에서도 이슬람의 위상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네번째 민주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슬람을 경계한다면 그 이유는 이슬람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방의 이슬람 비판자들은 테러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정의한다. 코란은 ‘너희는 선택권이 없다’(수라33:36)고 말한다. 이것은 다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 알라와 무함마드가 정해 놓은 것에는 어떤 선택권이 없다.
이슬람에는 자유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자유라는 개념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나왔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프간 사태 때 빈 라덴은 노골적으로 미국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민주주의를 포기하면 이라크에서 전쟁을 중지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슬람이 민주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준 발언이었다. 2007년 아프간 인질 사건 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탈레반이 한국 크리스천을 노린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기독교로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보도하였다. 이것은 이슬람은 반민주주의, 반자본주의, 반기독교라는 것을 암시한다.
다섯번째 공격적 배타주의로, 유대인과 기독교를 절대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든지 경전이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정죄하고 미워하라고 가르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코란은 분명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하라고 하지만 동시에 미워하라고 가르친다. 코란에 의하면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이미 온 선지자(무함마드)를 증거하지 않고 숨겼기 때문에 ‘지나가버린 백성’(코란2:141)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참 계시를 왜곡한 자들로 정죄한다. 코란의 ‘종교에 강요는 없을 지니라’(코란2:256)는 본문을 근거로 종교에 자유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 본문은 무효화된 것이다. 이슬람은 뒤의 계시가 앞의 계시를 무효화시키는 원리가 있다.
또 코란 3장85절에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 결코 수락되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고 하였다. 코란 5장57~59절에는 ‘믿는 자들이여 너희 종교를 조롱과 오락으로 하는 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 이들은 너희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로 믿음을 배반했노라. 너희가 믿는 자라면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 예배의 부름에 그들은 그것을 조롱과 오락으로 간주했으니 그들은 지혜가 없는 백성이었노라. 성서의 백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이전에 계시된 것을 믿는다하여 우리를 배반하느뇨. 너희 대다수는 거역자들이라’고 하였다.
코란 5장66절에는 ‘그들이 구약과 신약과 그들 주님이 계시한 것을 준수했다면 그들은 그 이상의 참된 진리를 맛보았을 것이라. 그들 가운데는 올바른 길로 향하는 무리도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저주받을 사악의 길을 따랐더라’, 3장181절에는 ‘궁핍하나 우리는 부유하도다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의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셨나니 하나님은 그들이 말하는 것과 선지자들을 살해한 죄악을 기록하시며 가로되 이글거리는 유황불을 맛볼지어다’, 4장89절에는 ‘그들이 그랬듯이 너희도 불신자가 되기를 원하며 너희가 그들과 같이 되기를 바라거늘 너희는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떠날 때까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럼에도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고 하여다.
더 나아가 코란은 불신자(infidel)는 정복하거나 죽이라고 가르치는데 불신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도 포함된다. 코란 4장56절은 알라의 계시를 불신하는 자들은 화염(화염은 지옥을 의미함) 속으로 들게 하라고 하며, 4장89절은 ‘불신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며 그들이 배반한다면 포획하고 살해하라’고 명한다.
코란 8장39절은 전쟁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다. 코란 8장60절은 군대와 말로써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에게 대항하라고 가르친다. 즉 물리적 힘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코란 47장4절은 전장에서 불신자들을 만났을 때 목을 때리고, 포로로 취하고 혹은 보상금을 받고 풀어주라고 가르친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큰 소리치는 것은 테러가 이슬람의 본질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건무슬림들이 이들을 싫어하면서도 강력하게 제재하지 못한다. 여기에 이슬람 사회의 고민이 있다고 본다. 이슬람은 위의 코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해명이 요구된다.(계속)
그러나 이슬람화가 되면 이러한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이슬람에서 종교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집단의 선택이다. 이슬람은 유엔인권헌장을 서방 기독교 세계가 임의로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종교 자유는 기독교와 서방 계몽주의, 합리주의 사상의 결과라고 강하게 거부한다. 그래서 이슬람은 이슬람 인권헌장을 따로 만들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이것을 가치관의 충돌이라고 정의한다.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이슬람은 종교는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사항이 아니라 가정과 국가가 하나의 종교로 통일되어야 하고, 그 종교는 반드시 이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슬람화되면 기독교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두번째 이슬람화 된 사회는 종교적 율법주의 사회가 된다. 이슬람화가 되면 개인의 생활이나 심지어 복장까지도 자유가 없다. 1979년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소위 이슬람 혁명을 일으켜 독재자 팔레비 왕을 몰아내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통치하는 시대였다. 여자들은 차도르가 의무화되고 립스틱이 금지되었고 남자들도 반소매를 입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종교적 율법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란 비행기를 타면 여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차도르를 써야 한다. 차도르는 이슬람 문화이지 우리 문화가 될 수 없다.
지금 이란의 청년들은 이슬람에 대한 강한 반발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외 언론들은 보도한다. 이란 대통령의 불법 선거를 가지고 아직도 데모가 일어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 동안의 이란 사회를 지배한 종교적 율법주의와 경제 실패에 대한 반발이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탈레반은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공포 정치를 하였다. 여자들이 직장에서 쫓겨 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자들은 화장을 못하고 강제로 차도르를 써야 한다. 간음하면 공개 처형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러한 공개처형으로 일 년에 수 백 명씩 죽는데, 이상하게도 간음의 경우 주로 여자들만 처형 당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여성들이 억울하게 많이 죽었다. 얼마 전 필리핀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근로 여성들을 구출해(?) 왔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극장도 술집도 없다. 여자들은 남자의 허락 없이는 외출의 자유도 없다.
이슬람화 된 사회는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실천하려고 한다. 그래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이 강한 국가에서는 샤리아를 강제로 형법화하려는데 대해 비무슬림들이 강력하게 반발해 둘 사이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슬람화 되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이슬람에서는 도적질하면 오른 손을 절단하는 형법이 있다. 일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것을 시행한다. 여자들에게도 할례를 한다. 그로 인한 여성 불구자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 여성인권단체들이 이것을 비판하자 이슬람 국가는 문화 간섭이라고 반발한다.
세번째 모든 것 위에 이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이슬람은 하나의 종교일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 위에 군림하는 총체적 시스템이다. 무함마드는 종교창설자이고 군사지도자이며 정치가이다. 이슬람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불가능하다. 이슬람 국가의 왕이나 정치가(대통령)는 이슬람의 수호자, 전파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란에는 대통령 위에 종교 지도자가 있다. 이것은 정치에서도 이슬람의 위상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네번째 민주주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슬람을 경계한다면 그 이유는 이슬람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방의 이슬람 비판자들은 테러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정의한다. 코란은 ‘너희는 선택권이 없다’(수라33:36)고 말한다. 이것은 다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 알라와 무함마드가 정해 놓은 것에는 어떤 선택권이 없다.
이슬람에는 자유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자유라는 개념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나왔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프간 사태 때 빈 라덴은 노골적으로 미국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민주주의를 포기하면 이라크에서 전쟁을 중지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슬람이 민주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준 발언이었다. 2007년 아프간 인질 사건 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탈레반이 한국 크리스천을 노린 것은 한국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기독교로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보도하였다. 이것은 이슬람은 반민주주의, 반자본주의, 반기독교라는 것을 암시한다.
다섯번째 공격적 배타주의로, 유대인과 기독교를 절대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든지 경전이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정죄하고 미워하라고 가르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코란은 분명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하라고 하지만 동시에 미워하라고 가르친다. 코란에 의하면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이미 온 선지자(무함마드)를 증거하지 않고 숨겼기 때문에 ‘지나가버린 백성’(코란2:141)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즉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참 계시를 왜곡한 자들로 정죄한다. 코란의 ‘종교에 강요는 없을 지니라’(코란2:256)는 본문을 근거로 종교에 자유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 본문은 무효화된 것이다. 이슬람은 뒤의 계시가 앞의 계시를 무효화시키는 원리가 있다.
또 코란 3장85절에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 결코 수락되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고 하였다. 코란 5장57~59절에는 ‘믿는 자들이여 너희 종교를 조롱과 오락으로 하는 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 이들은 너희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로 믿음을 배반했노라. 너희가 믿는 자라면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 예배의 부름에 그들은 그것을 조롱과 오락으로 간주했으니 그들은 지혜가 없는 백성이었노라. 성서의 백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이전에 계시된 것을 믿는다하여 우리를 배반하느뇨. 너희 대다수는 거역자들이라’고 하였다.
코란 5장66절에는 ‘그들이 구약과 신약과 그들 주님이 계시한 것을 준수했다면 그들은 그 이상의 참된 진리를 맛보았을 것이라. 그들 가운데는 올바른 길로 향하는 무리도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저주받을 사악의 길을 따랐더라’, 3장181절에는 ‘궁핍하나 우리는 부유하도다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의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셨나니 하나님은 그들이 말하는 것과 선지자들을 살해한 죄악을 기록하시며 가로되 이글거리는 유황불을 맛볼지어다’, 4장89절에는 ‘그들이 그랬듯이 너희도 불신자가 되기를 원하며 너희가 그들과 같이 되기를 바라거늘 너희는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떠날 때까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럼에도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고 하여다.
더 나아가 코란은 불신자(infidel)는 정복하거나 죽이라고 가르치는데 불신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도 포함된다. 코란 4장56절은 알라의 계시를 불신하는 자들은 화염(화염은 지옥을 의미함) 속으로 들게 하라고 하며, 4장89절은 ‘불신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며 그들이 배반한다면 포획하고 살해하라’고 명한다.
코란 8장39절은 전쟁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다. 코란 8장60절은 군대와 말로써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에게 대항하라고 가르친다. 즉 물리적 힘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코란 47장4절은 전장에서 불신자들을 만났을 때 목을 때리고, 포로로 취하고 혹은 보상금을 받고 풀어주라고 가르친다.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큰 소리치는 것은 테러가 이슬람의 본질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건무슬림들이 이들을 싫어하면서도 강력하게 제재하지 못한다. 여기에 이슬람 사회의 고민이 있다고 본다. 이슬람은 위의 코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해명이 요구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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