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庚寅년 호랑이 해이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 서로 간섭하지 못한다. 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神으로 섬긴다."고 되어있다. 이것을 미루어 보면 우리민족은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풍습이 원시부족국가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고있다. 호랑이 숭배사상은 산악 숭배사상과 융합되어 산신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호랑이의 별칭은 산군자*山君子,산령*山靈, 산중영웅*山中英雄이라 한다. 산신도에 묘사되어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사납기보다는 점잖고 친근하게 표현되어 있다. 민화에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는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고 조선시대 관복에는 무관의 흉배에 호랑이를 수놓고 있어 호랑이 그림을 걸어두면 자손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풍수설에서는 사방을 수호하는 동물로 동쪽에는 청룡*靑龍 서쪽은 백호*白虎 남은 주작*朱雀 북은 현무*玄武라는 이름을 가진 방위신이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무덤을 쓸 때도 좌청룡 우백호를 보아 자리를 정했다. 이러한 민족 신앙에 뿌리내린 우리는 해가 바뀔 때마다 12지신이야기들로 새해를 맞아 덕담으로 꽃을 피운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하는 말씀으로 새 시대를 연다. 히브리어로 창세기는 '베레쉬트'인데 '태초에'라는 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주관하시는 분으로 사람이 마땅히 경계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심을 말하고 있다. 오경을 기록한 모세시대(기록연대BC1446-1406)는 다신교와 범신교의 사상이 고대 근동 문화 속에서 깊이 뿌리내린 상황에서 하나님은 유일한 신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첫 구절에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요1:1) 했다. 태초와 말씀을 연계시키고 있는데 창세기1:1의 말씀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초시간적인 영원성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졌다. 말씀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로고스'로 본래 스토아(Stoic) 철학자들이 우주만물을 이루는 이성적 원리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유대인 철학자 Philo Judeus는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며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여기에 요한은 한발 더 나아가 로고스의 영원성 인격성 신성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태초와 말씀과 그리스도를 하나로 묶고 있는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고 생명이 되어서 만사형통하는 기쁨을 누릴게 되는 것이다. 말씀은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으로 새해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성탄 절기를 맞이하여 주님 오심의 날을 기념한다. 아기예수는 말구유에서 인간세상을 맞이했다. 태초와 말씀과 그리스도를 하나로 볼 때 그 안에는 생명이 있다고 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했다 하나님의 실체를 좀 더 광범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그 영원한 생명은 태초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시간 개념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신다. 이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 생명 존재는 빛으로 존재한다. 빛의 속성은 어둠의 대비되는 말로 그 어둠은 생로병사의
고통의 세상이다. 빛이 어둠에 비추나 어둠의 깨닫지 못한다고 했는데 빛은 정의와 진리와 저울을 상징하는 보조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물음에 답하시기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12:24)고 하셨다.
나는 이 요절에 주제를 달 때 '창조적 파괴'라고 썼다. 한 알의 밀이 땅속에 묻히는 원리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과 의식은 떨쳐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신 것이다. 어둠의 자아의식을 벗겨내고 새로운 창조 세계로 몰입되는 과정을 한 알의 밀속에서 생명 존재의 영원성을 표출해 내고 있다. 한 순간 생각을 바꿔 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밀이 땅속에 묻힐 때는 죽음이라 여겼을 터이나 막상 껍질을 벗고 적당한 수분과 온도를 품으면서 토양 속에 묻어있는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다 보면 생명 존재의 진리를 알게 되듯이 우리도 세상의 어둠에 버려져 있다가 신앙의 굴레에 얽혀서 이런 저런 연단을 겪은 후에는 참 생명의 가치와 자아 존재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기뻐할 날이 올 것이다.
이 복된 말씀으로 2010년 새 해의 문턱을 힘차게 밟아보자 예수님이 말구유에 오신 것은 비어있는 곳을 채워주시기 위해 오셨다. 비우면 채워진다는 원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셨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 나를 비우고 예수를 채우자 우리가 붙들고 있는 거짓 진리와 이상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를 주는 진리를 채우자(요8:32)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그분은 하늘보좌를 버리고 말구유에 오시었다. 버리다 보면 기뻐진다고 하신다. 성탄이 되면 기쁘다 구세주 오셨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 자신을 버리고 오직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러 오심을 뜻한다.
천자문에서 금은보화가 참 재물이 아니라 광음이라 했다. 광음*光陰(빛,시간)은 몸을 금옥*金玉으로 만들어 주는 자원이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보배로운 질그릇으로 만드는 종자 씨가 될 것이다.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의 별칭은 산군자*山君子,산령*山靈, 산중영웅*山中英雄이라 한다. 산신도에 묘사되어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사납기보다는 점잖고 친근하게 표현되어 있다. 민화에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는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고 조선시대 관복에는 무관의 흉배에 호랑이를 수놓고 있어 호랑이 그림을 걸어두면 자손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풍수설에서는 사방을 수호하는 동물로 동쪽에는 청룡*靑龍 서쪽은 백호*白虎 남은 주작*朱雀 북은 현무*玄武라는 이름을 가진 방위신이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무덤을 쓸 때도 좌청룡 우백호를 보아 자리를 정했다. 이러한 민족 신앙에 뿌리내린 우리는 해가 바뀔 때마다 12지신이야기들로 새해를 맞아 덕담으로 꽃을 피운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하는 말씀으로 새 시대를 연다. 히브리어로 창세기는 '베레쉬트'인데 '태초에'라는 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주관하시는 분으로 사람이 마땅히 경계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심을 말하고 있다. 오경을 기록한 모세시대(기록연대BC1446-1406)는 다신교와 범신교의 사상이 고대 근동 문화 속에서 깊이 뿌리내린 상황에서 하나님은 유일한 신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첫 구절에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요1:1) 했다. 태초와 말씀을 연계시키고 있는데 창세기1:1의 말씀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초시간적인 영원성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졌다. 말씀이라는 표현은 헬라어 '로고스'로 본래 스토아(Stoic) 철학자들이 우주만물을 이루는 이성적 원리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유대인 철학자 Philo Judeus는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며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여기에 요한은 한발 더 나아가 로고스의 영원성 인격성 신성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있다.
태초와 말씀과 그리스도를 하나로 묶고 있는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고 생명이 되어서 만사형통하는 기쁨을 누릴게 되는 것이다. 말씀은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으로 새해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성탄 절기를 맞이하여 주님 오심의 날을 기념한다. 아기예수는 말구유에서 인간세상을 맞이했다. 태초와 말씀과 그리스도를 하나로 볼 때 그 안에는 생명이 있다고 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했다 하나님의 실체를 좀 더 광범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그 영원한 생명은 태초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시간 개념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신다. 이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 생명 존재는 빛으로 존재한다. 빛의 속성은 어둠의 대비되는 말로 그 어둠은 생로병사의
고통의 세상이다. 빛이 어둠에 비추나 어둠의 깨닫지 못한다고 했는데 빛은 정의와 진리와 저울을 상징하는 보조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물음에 답하시기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12:24)고 하셨다.
나는 이 요절에 주제를 달 때 '창조적 파괴'라고 썼다. 한 알의 밀이 땅속에 묻히는 원리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과 의식은 떨쳐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신 것이다. 어둠의 자아의식을 벗겨내고 새로운 창조 세계로 몰입되는 과정을 한 알의 밀속에서 생명 존재의 영원성을 표출해 내고 있다. 한 순간 생각을 바꿔 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밀이 땅속에 묻힐 때는 죽음이라 여겼을 터이나 막상 껍질을 벗고 적당한 수분과 온도를 품으면서 토양 속에 묻어있는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다 보면 생명 존재의 진리를 알게 되듯이 우리도 세상의 어둠에 버려져 있다가 신앙의 굴레에 얽혀서 이런 저런 연단을 겪은 후에는 참 생명의 가치와 자아 존재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기뻐할 날이 올 것이다.
이 복된 말씀으로 2010년 새 해의 문턱을 힘차게 밟아보자 예수님이 말구유에 오신 것은 비어있는 곳을 채워주시기 위해 오셨다. 비우면 채워진다는 원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셨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 나를 비우고 예수를 채우자 우리가 붙들고 있는 거짓 진리와 이상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를 주는 진리를 채우자(요8:32)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그분은 하늘보좌를 버리고 말구유에 오시었다. 버리다 보면 기뻐진다고 하신다. 성탄이 되면 기쁘다 구세주 오셨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 자신을 버리고 오직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러 오심을 뜻한다.
천자문에서 금은보화가 참 재물이 아니라 광음이라 했다. 광음*光陰(빛,시간)은 몸을 금옥*金玉으로 만들어 주는 자원이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보배로운 질그릇으로 만드는 종자 씨가 될 것이다.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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