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와 사무엘”
사무엘과 엘리는 똑같이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했다. 그 당시 사무엘은 어린 소년이었고,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나이 많은 엘리 제사장은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그들의 나이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관계의 질이 이렇게 중요하다.
포도나무가 혼자의 힘으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사람에게도 탁월함에 이르는 성장(成長)은 그냥 오지 않는다. 더욱이 영적세계에서 자연성장이란 없다.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을 제해 버리고, 필요한 것을 더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이 이루어진다. 포도원의 농부가 부지런히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포도나무가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성장을 위하여 영적 가지치기가 꼭 필요하다.
만일 포도나무의 가지치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포도나무는 자신의 능력대로 성장하려고 교만을 부릴 것이다. 그 결과로 무질서하고 방만하게 성장하게 될 것이고, 지나치게 무성한 잎과 당도가 묽고 편차가 큰 불규칙적인 포도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제일 먼저 가지치기의 중요성(요한복음 15:2)을 힘주어 말씀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 안에서 성결의 가지치기, 절제의 가지치기를 잘 감당한 한 인물이었다. 그 결과로 요셉은 그의 형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적 성숙을 이루었고 하나님이 높이 들어 쓰는 사람이 되었다. 영적으로 탁월하게 성장한 요셉이 원수 같은 형제들에게 한 말을 보자.
“당신들은 나를 해하여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20-21).
요셉의 인품의 열매가 얼마나 성숙하고 아름다운가?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죄책감에 두려워 떨고 있는 형제들에게 한 말을 보니, 그가 하나님이 주신 꿈 안에서 얼마나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면서 성결하게 가지치기를 행하며 살았는지 잘 알겠다.
참 놀라운 축복이다.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싶지 않은가? 예수님을 참 포도나무로 받아들여 그 안에 깊이 들어와 거하고, 영적 가지치기를 통하여 성결과 순종의 삶을 살면 모두가 요셉처럼 된다.
“내가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1-2).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 선물은 주님이 “포도나무”이고 하나님은 “농부”이시고, 나는 “가지”라고 하는 “관계의 꿈” 인 것이다. 이 “관계의 꿈”을 붙들고 탁월함에 이르는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 보자. 5세기 프롤레마이스의 주교였던 시레네의 시네시우스(Synesius)는 이렇게 말했다.
"꿈보다 더 희망(希望)을 안겨 주는 것은 없다. 우리가 잠자는 동안 마음에 일어나는 희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과 보증으로 우리들의 꿈에 나타난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성서는 꿈의 보고(寶庫)이다. 내 기억이 옳다면 구약은 열여섯 장, 신약은 적어도 대여섯 장에서 주로 꿈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성서를 읽다보면, 이 외에도 꿈과 환상에 관한 구절들이 수없이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가 크리스천 이라면,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계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변화는 자신이 만든 꿈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므로 할 수 있으면 세상 안에서 보다는 예수님 안에서 꿈을 발견하도록 기도 하라.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꿈의 대가를 아낌없이 지불하라. 과정이 남다르면 결과도 남다르다. 탁월해진다.
사무엘과 엘리는 똑같이 하나님의 성소에서 봉사했다. 그 당시 사무엘은 어린 소년이었고,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나이 많은 엘리 제사장은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그들의 나이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관계의 질이 이렇게 중요하다.
포도나무가 혼자의 힘으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사람에게도 탁월함에 이르는 성장(成長)은 그냥 오지 않는다. 더욱이 영적세계에서 자연성장이란 없다.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을 제해 버리고, 필요한 것을 더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이 이루어진다. 포도원의 농부가 부지런히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포도나무가 올바르게 성장하지 못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성장을 위하여 영적 가지치기가 꼭 필요하다.
만일 포도나무의 가지치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포도나무는 자신의 능력대로 성장하려고 교만을 부릴 것이다. 그 결과로 무질서하고 방만하게 성장하게 될 것이고, 지나치게 무성한 잎과 당도가 묽고 편차가 큰 불규칙적인 포도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제일 먼저 가지치기의 중요성(요한복음 15:2)을 힘주어 말씀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 안에서 성결의 가지치기, 절제의 가지치기를 잘 감당한 한 인물이었다. 그 결과로 요셉은 그의 형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적 성숙을 이루었고 하나님이 높이 들어 쓰는 사람이 되었다. 영적으로 탁월하게 성장한 요셉이 원수 같은 형제들에게 한 말을 보자.
“당신들은 나를 해하여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20-21).
요셉의 인품의 열매가 얼마나 성숙하고 아름다운가?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죄책감에 두려워 떨고 있는 형제들에게 한 말을 보니, 그가 하나님이 주신 꿈 안에서 얼마나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면서 성결하게 가지치기를 행하며 살았는지 잘 알겠다.
참 놀라운 축복이다.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싶지 않은가? 예수님을 참 포도나무로 받아들여 그 안에 깊이 들어와 거하고, 영적 가지치기를 통하여 성결과 순종의 삶을 살면 모두가 요셉처럼 된다.
“내가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1-2).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 선물은 주님이 “포도나무”이고 하나님은 “농부”이시고, 나는 “가지”라고 하는 “관계의 꿈” 인 것이다. 이 “관계의 꿈”을 붙들고 탁월함에 이르는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 보자. 5세기 프롤레마이스의 주교였던 시레네의 시네시우스(Synesius)는 이렇게 말했다.
"꿈보다 더 희망(希望)을 안겨 주는 것은 없다. 우리가 잠자는 동안 마음에 일어나는 희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과 보증으로 우리들의 꿈에 나타난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성서는 꿈의 보고(寶庫)이다. 내 기억이 옳다면 구약은 열여섯 장, 신약은 적어도 대여섯 장에서 주로 꿈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성서를 읽다보면, 이 외에도 꿈과 환상에 관한 구절들이 수없이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가 크리스천 이라면,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계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변화는 자신이 만든 꿈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므로 할 수 있으면 세상 안에서 보다는 예수님 안에서 꿈을 발견하도록 기도 하라.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꿈의 대가를 아낌없이 지불하라. 과정이 남다르면 결과도 남다르다. 탁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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