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사람은 겉을 보지 않고 내면을 본다“
이사야 53장 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 없는 누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 꼭 포도나무와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도나무는 겉모양은 별 볼일 없이 초라하지만, 그 안에는 넘치는 수액과 각종 영양분과 내적인 아름다움이 풍부하여 그것에 붙어있는 가지가 많은 열매를 맺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점에서 또한 예수님과 닮았다. 골로새서 2장 3절을 자세히 주목하여 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렇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축복은 더 풍성하고 더 부요해진다. 예수님의 내면 안에서 맛보는 부요함이 포도나무와 흡사하다. 예수님도 포도나무도 겉보다는 안이 더 좋다. 외유내강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기독교를 안의 종교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예수님 스스로도 “나는 포도나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많은 열매를 맺듯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많은 과실을 맺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또한 포도나무는 번식력과 생산력이 탁월해서 한번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확(收穫)을 거두게 된 다는 점에서 예수님과 닮았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의 가지가 한번 동서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하면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게 뻗어나가는데, 가는 곳 마다 대속의 열매, 부활의 열매, 성령의 열매, 말씀의 열매, 중보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영적 포도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안으로 깊이 들어 가야한다. 겉만 맴도는 신앙인, 성전 뜰만 밟는 신앙인이 되지 말라. 겉의 신앙으로는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예수님의 진수(眞髓)를 알려면 나 자신이 다메섹 도상의 바울처럼 십자가의 은혜로 깨어지고 꺼꾸러지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주님의 생명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0절을 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강렬한 꿈이 있는 사람은 운명을 바꾼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품은 사람은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 야베스가 바로 이 이야기의 장본인이다. 그는 “고통을 불러 오는 자”라는 저주스런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던 불행한 유다 지파 사람이었다. 얼마나 그의 운명이 기구했으면 그를 낳은 어머니마저 그를 “고통을 불러 오는 자”라고 불럿을까?
그런데 “야베스가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이유가 있다. 그가 기도하나로 불행한 운명의 그림자를 한방에 시원하게 날려 보내버린 장본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의 기도는 그에게 주어진 현재의 환경과 운명에 동의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야베스가 이 꿈을 갖게 되자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복을 누리며 그 복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축복의 전달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존귀한자가 되는 미래를 꿈꾸며 밤낮으로 간구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을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 상 4:10).
놀랍게도 하나님은 야베스가 구하는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고통을 불러 오는 자”가 이제는 “은혜와 복을 불러 오는 자”가 되었다. 더 이상 환난과 근심가운데 있지 않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의 친족 이스르엘과 이스마와 잇바스가 우러러 보는 “존귀한 자”(역대 상4:9)가 되었다. 여기서 “존귀한 자” 란 말은 “탁월한 자”(esteemed one)란 뜻이다. 잊지 말라. 강렬한 꿈을 품고 강청하는 기도를 드릴 때 탁월하게 되는 응답은 반듯이 온다.
“나의 운명을 바꾸는 예수님의 꿈”
꿈은 사람만 꾸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꿈을 꾸신다.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꿈이 요한복음 15장 7-8절과 12절 그리고 16절에 잘 나타나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15:7-8).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2)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16).
예수님의 꿈 내용을 요점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예수님을 붙들면 과실을 많이 맺는다.
둘째, 예수님을 붙들면 제자가 된다.
셋째, 예수님을 붙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산다.
넷째, 예수님을 붙들면 서로 사랑하게 된다.
다섯째, 예수님을 붙들면 구하는 것을 응답받는다.
“예수님의 꿈을 가지고 출발하라”
현재의 삶에 만족이 없는가? 야베스처럼 고통의 현실을 미래의 축복으로 바꾸고 싶은가? 영적 불황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있는가? 모세와 다윗, 느헤미야처럼 이 세상에 신선한 임팩트(impact)를 주고 변화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당신의 삶 전체를 예수님의 꿈에 플러그인(plug-in) 하라. 그리고 자신의 꿈이 아닌 예수님의 꿈을 품고 새롭게 출발하라.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되기 원하는가? 예수님의 꿈을 먼저 생각하라.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는 삶을 원하는가? 예수님의 꿈이 주는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라. 미움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원하는가? 예수님의 꿈이 서로의 코이노니아가 되게 하라.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중보기도에 힘쓰라. 기도 응답받기를 원하는가? 예수님의 꿈 안에서 믿음으로 간구하라.
“예수님의 꿈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섯 가지 원리를 결코 잊지 말라. 당신은 분명히 요셉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탁월한 인물이 될 것이다.
이사야 53장 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 없는 누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 꼭 포도나무와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도나무는 겉모양은 별 볼일 없이 초라하지만, 그 안에는 넘치는 수액과 각종 영양분과 내적인 아름다움이 풍부하여 그것에 붙어있는 가지가 많은 열매를 맺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점에서 또한 예수님과 닮았다. 골로새서 2장 3절을 자세히 주목하여 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렇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축복은 더 풍성하고 더 부요해진다. 예수님의 내면 안에서 맛보는 부요함이 포도나무와 흡사하다. 예수님도 포도나무도 겉보다는 안이 더 좋다. 외유내강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기독교를 안의 종교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예수님 스스로도 “나는 포도나무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많은 열매를 맺듯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많은 과실을 맺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또한 포도나무는 번식력과 생산력이 탁월해서 한번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확(收穫)을 거두게 된 다는 점에서 예수님과 닮았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의 가지가 한번 동서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하면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게 뻗어나가는데, 가는 곳 마다 대속의 열매, 부활의 열매, 성령의 열매, 말씀의 열매, 중보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영적 포도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안으로 깊이 들어 가야한다. 겉만 맴도는 신앙인, 성전 뜰만 밟는 신앙인이 되지 말라. 겉의 신앙으로는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예수님의 진수(眞髓)를 알려면 나 자신이 다메섹 도상의 바울처럼 십자가의 은혜로 깨어지고 꺼꾸러지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주님의 생명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0절을 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강렬한 꿈이 있는 사람은 운명을 바꾼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품은 사람은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 야베스가 바로 이 이야기의 장본인이다. 그는 “고통을 불러 오는 자”라는 저주스런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던 불행한 유다 지파 사람이었다. 얼마나 그의 운명이 기구했으면 그를 낳은 어머니마저 그를 “고통을 불러 오는 자”라고 불럿을까?
그런데 “야베스가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이유가 있다. 그가 기도하나로 불행한 운명의 그림자를 한방에 시원하게 날려 보내버린 장본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의 기도는 그에게 주어진 현재의 환경과 운명에 동의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야베스가 이 꿈을 갖게 되자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복을 누리며 그 복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축복의 전달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존귀한자가 되는 미래를 꿈꾸며 밤낮으로 간구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을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 상 4:10).
놀랍게도 하나님은 야베스가 구하는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고통을 불러 오는 자”가 이제는 “은혜와 복을 불러 오는 자”가 되었다. 더 이상 환난과 근심가운데 있지 않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의 친족 이스르엘과 이스마와 잇바스가 우러러 보는 “존귀한 자”(역대 상4:9)가 되었다. 여기서 “존귀한 자” 란 말은 “탁월한 자”(esteemed one)란 뜻이다. 잊지 말라. 강렬한 꿈을 품고 강청하는 기도를 드릴 때 탁월하게 되는 응답은 반듯이 온다.
“나의 운명을 바꾸는 예수님의 꿈”
꿈은 사람만 꾸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꿈을 꾸신다.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꿈이 요한복음 15장 7-8절과 12절 그리고 16절에 잘 나타나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15:7-8).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5:12)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16).
예수님의 꿈 내용을 요점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예수님을 붙들면 과실을 많이 맺는다.
둘째, 예수님을 붙들면 제자가 된다.
셋째, 예수님을 붙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산다.
넷째, 예수님을 붙들면 서로 사랑하게 된다.
다섯째, 예수님을 붙들면 구하는 것을 응답받는다.
“예수님의 꿈을 가지고 출발하라”
현재의 삶에 만족이 없는가? 야베스처럼 고통의 현실을 미래의 축복으로 바꾸고 싶은가? 영적 불황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있는가? 모세와 다윗, 느헤미야처럼 이 세상에 신선한 임팩트(impact)를 주고 변화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당신의 삶 전체를 예수님의 꿈에 플러그인(plug-in) 하라. 그리고 자신의 꿈이 아닌 예수님의 꿈을 품고 새롭게 출발하라.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되기 원하는가? 예수님의 꿈을 먼저 생각하라.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는 삶을 원하는가? 예수님의 꿈이 주는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라. 미움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원하는가? 예수님의 꿈이 서로의 코이노니아가 되게 하라.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중보기도에 힘쓰라. 기도 응답받기를 원하는가? 예수님의 꿈 안에서 믿음으로 간구하라.
“예수님의 꿈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섯 가지 원리를 결코 잊지 말라. 당신은 분명히 요셉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탁월한 인물이 될 것이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