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을 생각하면 “삼인행 필유아사”라는 공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이 말은 세 사람이 함께 동행을 하면 그 속에는 반드시 내가 배워야할 스승이 한 사람은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동상이몽”이라는 말도 떠오르는데 이 말은 비록 둘이 같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지만 각자 속으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상관없이 타인과 동행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동행이 스승을 만나는 동행일 수도 있고, 겉만 동행처럼 보일 뿐 실재로는 전혀 동행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어차피 동행해야 한다면 동상이몽식의 동행보다는 스승을 만나는 동행이 더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못해 하는 동상이몽식의 동행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책임은 당연히 자기가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요? 나는 기분좋은 동행을 원하는데 상대방이 거부해서 그렇게 안되는 것일까요? 나는 동행을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동의를 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흔히 손바닥은 서로 부딪혀야 소리를 낸다고 말하듯 우리의 동행이 불편해지는 것은 결코 한 사람만의 일방적인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즐거운 동행을 원하지 피곤하고 불편한 동행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좋은 동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의 마음 속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분좋은 동행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남을 우선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가끔 비행기로 여행을 할 때 기내에서 화장실을 사용할 경우가 생깁니다.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가 먼저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이 어떻게 뒷처리를 해놓았느냐에 따라 뒤에 사용하는 사람의 기분이 확 달라집니다. 먼저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이 깨끗히 뒷 처리를 해놓은 상태에서 다음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자기 편리대로 사용하고 훌쩍 나가버린 사람 뒤에 사용할 때에는 짜증과 함께 그 사람과는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동행이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대단한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에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동행의 법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기꺼이 가주고, 속옷을 벗어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겉옷까지 벗어주고, 오른편 빰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는 마음으로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동행 중에 생기는 분쟁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찾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을 향해 분노하기 보다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을 원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만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우리의 동행을 이어주고, 불편한 동행을 즐거움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우리 자신의 동행 속에 분쟁이 생길 때 이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이런 마음을 가지면 손해볼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이런 마음을 품어야하는 이유는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동행하는 그 사람으로 인해 나의 인생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희생해서라도 나의 동행이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언젠가 그 혜택은 고스란히 동행하는 나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힘들고 어렵지만 동행하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은 곧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나와 동행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세요.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성도들, 이웃, 동료들이 과연 나와 동행하는 것이 기쁘고 즐거울까요? 아니면 나같이 나쁜 동행을 만나서 불행하다고 불평할까요? 나와의 동행이 어떤 동행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열쇠는 상대방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손에 있습니다. 비록 시작은 힘들고 아프지만 나와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좋은 동행이 되어줄 수 있다면 머지않아 그들도 나와 동행하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전하는 배려가 당장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다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내민 배려의 손길은 반드시 소중한 결실을 가득 담아 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우리의 동행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날 때 그들의 입에서 "당신과 동행할 수 있어서 난 참 행복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은 아마도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런 동행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용기를 내어 지금 그 동행을 시작해 보세요. 우리 생애를 통해 그런 동행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