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있어 한 참 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고 있는 교우께 아내가 <엄마를 부탁해>를 선물 했던가 봅니다. 그분이 한국을 다녀오면서 고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틈마다 한 꼭지씩 읽고 있습니다.

고 장영희 교수에게는 ‘광팬’(열광적인 팬)이 많습니다. 한국 영문학계의 대부인 장왕록 교수의 딸이면서 아버지를 뒤이어 영문학자가 되었다는 점,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로 인해 1급 장애인으로 살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인과 다름없이 씩씩하고 밝게 살아왔다는 점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1년에 유방암을 선고받고 성공적으로 치료했으나, 3년 후 암이 척추로 전이되어 지독한 투병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굴하지 않고 세상과 인생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습니다.

두 번째 투병을 통해 암을 완치한 줄 알았는데, 암이 다시 간으로 전이되었음이 드러났고, 또 한 번의 장렬한 싸움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책의 말미에서 그는 "내가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라고 반문합니다. 세 번째 암 전이 소식을 듣고 한 말입니다. 자신이 희망을 너무 크게 떠들고 다녀서 운명의 신이 그에게 복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그는 ‘악한 운명의 신’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희망을 떠들고 살 거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이미 죽었지만 죽은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싸움에서 졌지만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육신으로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지만, 어디선가 그의 상징과도 같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암이 재발하기 전에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삶의 요소요소마다 위험과 불행은 잠복해 있게 마련인데, 이에 맞서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불패의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면 그 싸움은 너무나 비장하고 슬프다. …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버리는 자살 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죽었으나 죽은 것 같지 않고, 패배했으나 패배한 것 같지 않은 장영희 교수를 생각하다 보니, 이 세상에는 ‘살았으나 산 것 같지 않은’ 삶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리했다고 환호하지만 승리한 것 같지 않고, 성공했다고 자랑하지만 성공하지 않은 것 같은 삶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진실로 불쌍한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세 번째 싸움에서도 이기고 싶었습니다. "내 계획에 죽음은 없다"고 공언하며 살았습니다. 그랬더라면 참 좋았을 것입니다. 사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며, 성공하고 승리하고 번영하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죽어도 사는 길이 있으며,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삶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하겠습니다. 그래야 살아도 제대로 살고, 죽어도 잘 죽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09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