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한 청년 체 게바라가 스물셋 약관의 나이에 모터 사이클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 전 대륙을 8개월간 돌아본다. 생후 두 살 때부터 앓기 시작한 천식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에 진학했다. 장차 꿈은 남미의 스위스로 불리는 바릴로체 호수 주변에 그림 같은 병원을 짓고 심신이 찌든 현대인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전문의가 되는 것이다. 상아탑에서 감히 경험할 수 없었던 남미 대륙과 그 대륙의 주인인 라티노들의 삶의 정황을 보고 싶어 떠난 장장 6만 킬로 여행길이다.

거대한 흙탕물로 바다를 이룬 아마존 강을 기선으로 도착한 곳이 싼 빠블로(San Pablo)다. 그곳은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나병환자 집단 촌이다.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에서까지 몰려온 중증 나환자들의 보금자리인 셈이다.

한센씨 환자들의 처소는 남과 북으로 갈려져 있다. 강 남쪽에 번듯하게 지어진 숙소는 의사, 간호사들의 공간이다. 배를 타고 나환자 촌으로 들어가 진료하고 해질무렵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강 북편에 야자수 잎으로 엉성하게 지붕을 이은 초가집은 나병으로 신체가 손상되고, 이목구비가 일그러진 중증 나환자들이 사는 절망의 땅이다.

전염방지 고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환자들의 환부를 치료하는 체를 보고 환자들이 도리어 걱정하지만, 거리낌없이 다가가 치료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어루만진다. 나환자가 먹다 건내준 음식, 전혀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으며 고마워하는 그는, 절망촌에 희망이란 불을 켜 놓는다.

거대한 남미 대륙을 듬직하게 바쳐들고 있는 안데스 산맥, 설산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 지평선 멀리 아득한 평야에 아나콘다같이 구불구불한 강을 이뤄 유구히 흘러가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 하지만, 그 땅에 사람들은 정작 너무 가난하고, 너무 오래 유린당해 기진맥진 지쳐있었다.

그 땅을 허락하신 이가 그토록 기대하셨던 평등과 사랑과 화목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스페인 식민지배 때부터 소수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자손만대 세습해서 누리고 있다. 절대 다수의 빈민들은 절대 빈곤을 해소할 옥수수, 감자 몇 알이 없어 신음과 고통을 가득 토해놓고 있는 통곡의 땅이었다.

아름다운 땅이 더러운 이권과 탐욕으로 얼룩져 온통 반목과 전쟁의 각축장으로 변해버린 모습에 탄식하는 체, 갈등의 뿌리들을 송두리째 뽑아내고, 온전하게 회복되는 희년을 갈망하는 꿈의 사람 체는 고뇌한다. 풍성한 땅의 소산물이 골고루 나눠지고 화목하게 삶을 영위하는 비젼을 가슴에 품는 순간, 천신만고 끝에 취득한 의사 면허를 가차없이 버렸다. 혁명의 이상이 펼쳐질수만 있다면 의사로서 보장된 편안한 삶의 기득권을 포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허무한 탁상 공론보다는 바른 이상을 펼쳐, 뭔가 작은 희망의 싹을 틔어 보려고 과테말라, 멕시코, 쿠바, 볼리비아 정글을 누비며 혁명의 에너지를 불사른다.

뒤늦게 사람들은 왜 체 게바라에 열광하는 것일까?
비스듬하게 눌러쓴 베레모, 그 상단에 선명하게 그려진 왕별, 짙은 구렛나루와 덥수룩한 수염, 미소 머금은 입에 꼿꼿하게 물려진 아바나 시가, 혁명의 꿈을 가득담은 불타는 눈망울, 쿠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는 우리 시대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었다”라는 찬사를 바쳤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기에, 또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최고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 정의에 대한 신념으로 짧지만 굵게 살았던 체, 반목의 벽을 넘어 서로 사랑으로 뒤범벅되어 살맛나는 세상 만드는 것에 비젼을 가졌던 이상주의자가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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