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얼굴에 두 가지 표정이 보이는 요즈음이다. 사람들의 얼굴을 처음 보면 보통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는데, 몇 초 후에는 왠지 수심과 걱정이 함께 묻어나 보인다. 내가 이런 얼굴 표정을 인상 깊게 본 것은 병원에서 채플린으로 일할 때였다. 병원의 많은 환자와 보호자 중에서도 다름아닌 재활병원의 재활학교 학생들의 입학/졸업식에 참석해서 설교를 할 때, 아이들 뒤에 서 있던 부모님들의 얼굴에서 오래된 두 표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주로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인데다 모두가 뇌성마비와 지체 장애 등으로 정상적인 표현과 활동들이 무척 힘들었고, 많은 경우 혼자서는 불가능 했다. 이들을 짧게는 6년, 길게는 몇 십 년씩 가르친 선생님과 아이한테 매여 살아온 부모님들을 졸업식에서 대할 때면 나는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밝게 인사말을 전할 수 있지만, 평생을 수고하는 부모님들에게는 무어라 딱히 건넬 말을 못 찾아 어정쩡한 눈 인사만 했다. 왜냐하면 부모님들의 얼굴에 묻어나는 두 가지 묘한(?) 표정이 나의 말문을 막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보통아이 같으면 1분이면 읽을 송별사를 5분이 넘도록 힘들게 읽어가는 모습을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지켜 보고 있노라면, ‘일분 일초도 눈 돌릴 여유도 없이 이들을 부여잡고 정말 몸이 부서져라 돌보며 가르친 분들의 노고가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밀려와 그 어떤 졸업식보다 나에게는 감동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졸업식에 참석했을 때이다. 대부분의 졸업생 부모님들은 두 분 중에 한 분만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광경인데, 유독 한 아이에게는 온 가족이 다 참석을 한 모습이 내 눈을 번쩍이게 했다. 여느 부모님과 표정이 사뭇 달랐다. 나는 무척 놀라우면서도 이 일이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나의 마지막 축복 기도와 졸업기념촬영이 끝나자 마자, 나는 담당 전도사님께 살짝 물어 보았다. "저,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온 가족이 다 참석했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요?" "예, 목사님 제가 그 아이의 엄마를 소개해 드리죠,,,"하며 전도사님께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모셔왔다.

차분하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아이의 어머님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그녀의 인사에 ",,,이렇게 온 가족이 다 와서 아이의 졸업을 축하하니 정말 보기 좋습니다"라고 화답을 했다. 그러자 "목사님, 우리 JC는 저희 집의 보물이예요, 우리 가족은 JC 때문에 사는 맛이 나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JC 엄마와 헤어진 후 나는 더 놀라운 사실을 전도사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목사님, JC는 진짜 아들이 아니고, 양자로 데려온 아들이랍니다" 그 말에 나는 ‘보물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보았던 것처럼 한 순간 멍했다.

한 10년 전 미국에서 잠시 병원목회(C.P.E)공부를 할 때, 한국아이를 입양하여 자신의 친아들처럼 자랑했던 Linda 여사의 저녁식사 초대 때 보다 난 더 큰 감동에 사로 잡힌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당장의 어려움에 얼굴 빛이 어두운데, 끝이 보이질 않는 장애아의 돌봄을 자처한 사연 속의 이들의 마음(오히려 기뻐하며 보물이라고 여기는)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아마도 그분들은 미래의 보물을 감지하고 현재를 통해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늘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을 자신들의 보물이 오늘도 이 땅에 임하고 있다는 믿음일까? 이렇게 본다면, 우리 민족에게도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할 보물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재산도 명예도 아닌 우리들의 사랑과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기나긴 배고픔에 숨을 쉬고, 걷기 조차 어려운- 북녘의 어린이들(이 얼마나 큰 장애인가!)이리라.

만약 이들을 우리가 마음으로 받아주고 가슴으로 안아 준다면, 아직도 두 동강 난 Korea의 혼미스러운 얼굴은 점점 제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 믿는다. 힘없고 무고한 동족의 아이들 한 명만이라도 우리가 입양한다는 심정으로 매월 영양제를 보내어 살려낸다면 Korea의 얼굴도 다시 빛나리라.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의 보물이기에,,,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