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기독일보는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 주님의 사랑과 고난의 의미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자 워싱턴주 각 교회의 고난주간 새벽예배 설교를 요약 게재 합니다. 이 지역 모든 성도들과 교계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롭게 일어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시애틀임마누엘교회 송찬우 목사
마태복음 26장 31-35, 69-75 제목: 제자다운 제자의 길로 돌아가자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세번째 새벽입니다. 이시간 우리 주님이 받으신 고난이 나를 위한 고난이라는 은혜가 우리 심령을 가득 채울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위기에 처하셨을때 제자 중 그 누구라도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는 순간에도 제자들을 염려하셨습니다. 나를 위한 주님의 깊은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험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주님은 우리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관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면 하나님과 교제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보면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은 제자답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다 흩어져 버리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그 이유를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이 제자다울 수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제자들이 제자들 자신을 너무 몰랐습니다. 제자는 스승에게서 배우자는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제자 가운데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이런 문제에서 실패합니다. 늘 나서기를 좋아하고 호언장담하고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며 잘난척을 합니다.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주를 버리지 않겠다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가장 무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누군가 헬라의 철학자 탈레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자기를 아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렇다면 가장 쉬운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탈레스는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문제 입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님 앞에 돌아보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아이작 뉴튼을 아실 것 입니다. 지식이 충만했던 사람이 말년에 기억 상실증에 걸립니다. 한 제자가 너무나 안타까워 뉴튼을 찾아가지만 심지어 그 제자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뉴튼은 자신의 나이도 잊어버렸습니다. 답답한 제자가 선생님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뉴튼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신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이 두가지를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앞에서 예수님의 사람들로서 다른 것은 몰라도 나라는 존재는 예수님께서 저렇게 처절한 십자가를 통해 구속해 주신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이것이 변치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제자가 된다는 것을 뭔가 엄청난 모습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장발족이 유행할 때 교회에 나오는 청년이 장발을 하고 나왔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목사님이 견디다 못해 예배 후에 당회실로 이 청년을 불렀습니다. 머리를 못깎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더니 이 청년이 목사님 방에 걸려있는 예수님의 사진을 보며 예수님을 닮아 간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간다는 것이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 필요없습니다. 내가 어떤 형편과 환경 가운데 처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죄인된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희생하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이 제자되지 못한 두 번째 이유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 하라고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고난 앞에서 뿔뿔히 흩어졌던 이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리 대비하고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과 다른 초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상황 가운데 우리의 초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재난을 보며, 또 미국의 최대 경제 위기 가운데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제자라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오고 있지 않나 생각하며 기도의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의 방향과 같아야 합니다. 그렇게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려분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기도는 응답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 후 우리의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기도응답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 작은 인격의 변화와 신앙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도응답 입니다. 내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알면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깊이 묵상할 것은 주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지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겠다는 다짐과 이 시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복된 은혜가 주님의 제자되길 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시애틀임마누엘교회 송찬우 목사
마태복음 26장 31-35, 69-75 제목: 제자다운 제자의 길로 돌아가자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세번째 새벽입니다. 이시간 우리 주님이 받으신 고난이 나를 위한 고난이라는 은혜가 우리 심령을 가득 채울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위기에 처하셨을때 제자 중 그 누구라도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는 순간에도 제자들을 염려하셨습니다. 나를 위한 주님의 깊은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험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주님은 우리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관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면 하나님과 교제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보면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은 제자답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다 흩어져 버리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그 이유를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이 제자다울 수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제자들이 제자들 자신을 너무 몰랐습니다. 제자는 스승에게서 배우자는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제자 가운데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이런 문제에서 실패합니다. 늘 나서기를 좋아하고 호언장담하고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며 잘난척을 합니다.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주를 버리지 않겠다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가장 무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누군가 헬라의 철학자 탈레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자기를 아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렇다면 가장 쉬운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탈레스는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문제 입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님 앞에 돌아보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아이작 뉴튼을 아실 것 입니다. 지식이 충만했던 사람이 말년에 기억 상실증에 걸립니다. 한 제자가 너무나 안타까워 뉴튼을 찾아가지만 심지어 그 제자의 이름도 잊어버리고 뉴튼은 자신의 나이도 잊어버렸습니다. 답답한 제자가 선생님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뉴튼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신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이 두가지를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앞에서 예수님의 사람들로서 다른 것은 몰라도 나라는 존재는 예수님께서 저렇게 처절한 십자가를 통해 구속해 주신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이것이 변치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제자가 된다는 것을 뭔가 엄청난 모습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장발족이 유행할 때 교회에 나오는 청년이 장발을 하고 나왔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목사님이 견디다 못해 예배 후에 당회실로 이 청년을 불렀습니다. 머리를 못깎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더니 이 청년이 목사님 방에 걸려있는 예수님의 사진을 보며 예수님을 닮아 간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 간다는 것이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 필요없습니다. 내가 어떤 형편과 환경 가운데 처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죄인된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희생하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이 제자되지 못한 두 번째 이유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 하라고까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고난 앞에서 뿔뿔히 흩어졌던 이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리 대비하고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과 다른 초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상황 가운데 우리의 초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재난을 보며, 또 미국의 최대 경제 위기 가운데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제자라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오고 있지 않나 생각하며 기도의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의 방향과 같아야 합니다. 그렇게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려분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기도는 응답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 후 우리의 상황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기도응답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 작은 인격의 변화와 신앙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도응답 입니다. 내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알면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깊이 묵상할 것은 주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지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겠다는 다짐과 이 시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복된 은혜가 주님의 제자되길 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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