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애틀랜타 한국 학교의 개교

1980년 9월 14일 오후 9시 개최된 한인회 정기이사회에서 김학봉 한인회장은 기금을 모금하여 1981년도부터 한국 학교를 건립할 계획안을 제출하였고 이 계획안이 이사회를 통과하였다. 애틀랜타 총영사관으로부터 책정된 1980년도 한국 학교 예산과 함께 한인회에서 모금한 기금을 합하여 한국 학교 기금 1천 달러를 책정 확보하고, 계속 한인들의 협조를 받아 1981년도에는 한국학교를 부활하여 2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로 결정하였다.(한국일보 애틀랜타 지국의 보도, 1980년 9월 26일 발행한 애틀랜타판 기사에서.)

오늘날의 애틀랜타 한국 학교는 1981년 7월 메모리얼 아트 센터(Memorial Atr Center) 옆에 있는 미 제일 장로 교회(First Prespyterian Church) 교육관에서 개교한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애틀랜타 한국학교는 1981년 박선근 한인회장이 한국 학교 창설 준비위원회(위원장 방창모)를 구성하고, 동 위원회에서 위촉한 이사회는 초대 이사장 겸 교장으로 송종규 씨를 선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일보(1981년 5월 28일자, 6월 9일자, 6월 23일자, 7월 21일자) 기사는 한국 학교의 개교 과정을 다음과 같이 게재하였다.

애틀랜타 한국 학교 이사회가 1981년5월 21일 오후 7시 30분 동원 중국식당에서 24명의 이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먼저 한국 학교 설립 추진에 대하여 한국 학교 추진 준비위원장 방창모 박사가 대략적으로 설명하였다. 다음에 이사장 선거에 들어가 방창모 박사를 선출하였으나 방참모 박사가 극구 사양함으로써 산부인과 의사인 송종규 씨가 추대되어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인준을 받았다.

또한 이사회에서 긴급을 요하는 한국 학교 일들을 토의하고 의결할 수 있는 12명의 상임위원을 선출하였다. 한편 상임위원회에서는 곧 교육 문제에 밝고 덕망이 있는 분을 한국 학교 교장으로 추대할 예정이다. 이 날 한인회장 박선근, 한인회 이사장 이광명, 준비위원장 방창모, 그리고 한만희, 이영복, 김종순, 신영교, 최원택, 이상호, 김현학, 지흥구 등이 상임이사로 선출되었다.

애틀랜타 한국 학교(이사장 송종규)는 곧 개교를 앞두고 5명의 교사진(김경숙, 안재복, 그레이드 리어던, 곽수미, 이규성)을 위촉 편성하였다. 한국 학교 교장 선임 문제는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 문제에 밝고 열성과 활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덕망있는 인사를 한국 학교 교장으로 물색하고 있는 중인 데, 2~3명을 추대하여 보았으나 본인들이 극구 사양함으로써 이사장이 겸직하여야 할 형편에 있다.

애틀랜타 한국학교 상임 이사회는 1981년 6월 10일 오후 7시 YMCA에서 모임을 갖고 7월 11일부터 메모리얼 아트 센터에 있는 미 제일 장로 교회에서 한국 학교를 개강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방학기간 후에도 매주 토요일마다 학교를 계속 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날 이사회에서는 교사 김경숙 씨(국어), 강은희 씨(음악), 안재복 씨(미술) 등으로부터 교육 과정과 어린이 교육 지도 방향 등에 관해서 설명을 들었다. 이날 상임이사 12명은 한국 학교 기금으로 100달러 씩 각출 하기로 합의하였다.

애틀랜타 한국 학교에 한인 학생 112명과 미국인 학생 3명이 등록하여 총 115명이 등록하였다. 개강 두번째 주를 맞이하는 날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95명이었다. 이제 애틀랜타 한국 학교는 애틀랜타에 가장 큰 규모인 것이다. 두번째 주에는 음악 나오희(여) 선생님, 국어 A반 지혜정(여) 선생님, 국어 B반 김경숙(여) 선생님, 미술 안재복 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그리고 서무 행정을 이영복 씨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