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애틀랜타 한인회의 다양한 활동들 (2)

(5) 흑인들의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배척 운동을 방지하기 위한 긴급회의 개최

1984년 10월 27일 오후 8시 한국관에서 배수일 한인회장, 한인 식품협회 박진호 이사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관계자들이 모여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흑인들의 배척 운동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긴급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날 회의에서 앞으로의 대책 문제에 관해 3시간 동안 토의한 끝에 흑인과의 유대관계를 잘 유지하자는 12가지 유의사항을 결의하였다.

이날 긴급회의에서는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한인상점들이 1) 정기적으로 흑인 교회 방문, 2) 흑인 교회 광고협조, 3) 흑인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게 할 것과 흑인 종업원을 채용할 것, 4) 공공기관이나 학교행사에 참여할 것, 5) 흑인 불우 이웃 돕기 및 자진 도네이션, 6) 흑인 지도자들과 대화, 7) 사건 발생시 경찰에 신고, 8) 흑인 기관이나 YMCA에 수시로 협조 요청 등 흑인 사회에 대한 관심과 협조를 잊지 말 것을 토의하였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라도 한인 기관에 연락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뱅크헤드 하이웨이에 있는 한인 상점 ‘수퍼 세이버 스토어’에서 흑인들에대한 불친절, 흑인 고용원 해고, 흑인교회에서 헌금 요청시 거절 등으로 인하여 누적된 불협화음이 애틀랜타 흑인사회에 퍼졌고, 조지아 올리버 흑인 감리교회에서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배척운동을 하려고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김학봉 상공회의소 회장과 박진호 식품협회 이사장이 황급히 흑인 지도자와 교역자들을 만나 극적으로 타협하여 흑인 데모를 막고, 이 날 긴급 모임을 주선한 것이었다.

(6) 애틀랜타 한인회 7.4 독립기념 퍼레이드에 참가

애틀랜타 한인회는 어떤 형식이든 거의 매년 애틀랜타 다운타운에서 개최하는 미국 독립 기념 퍼레이드에 참가하였다. 어떤 연도에는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하여 애틀랜타 한인회가 단독팀으로 참가 하기도 하고, 어떤 연도에는 다른 아시아 민족들과 공동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1979년 7월 4일 애틀랜타 한인회(회장 강석영)는 미국 독립 203주년 기념 퍼레이드에 단독팀으로 참가하여 1등을 하였다. 당시에 이 퍼레이드에 참여한 한인들은 독립 기념 퍼레이드에 참가하여 1등을 한 것을 대단히 명예스러운 일로 기억하고 있다.

1987년 7월 4일 오전 10시부터 애틀랜타 다운타운에서 개최된 미국 독립기념 퍼레이드에 박진호 한인회장과 수 명의 한인들이 참가하였다. 이날 퍼레이드에는 ‘아시안 퍼시픽’이란 타이틀로 한국-중국-인도-필리핀-월남 등이 공동으로 참가하였다. 1987년 7월 13일자 한국일보 애틀랜타 지국(지국장 김학규) 보도기사는 이 날의 퍼레이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주: 거의 매년 애틀랜타 한인회가 퍼레이드에 참여하였지만, 이 날의 퍼레이드를 단지 하나의 사례로 제시하고자 한다.)

지난해에는 여러 국가들이 국기를 들고 참가하였으나, 올해는 개별 국가의 국기 대신에 ‘아시안 퍼시픽’이란 플래카드와 성조기만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로 공동 회의에서 결의하였다. 그러나 한인회 측에서는 이 사실을 늦게 알고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려고 하였다. 결국 이 날 박진호 한인회장이 단독으로 태극기를 들고 약 1천 m를 행진하는 것으로 끝을 내었다.

‘아시안 퍼시픽’의 회장이 월남인이었지만 월남의 국기를 갖고 나올 수 없었고 중국인들 또한 어떤 국기를 갖고 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독립기념 퍼레이드에서 ‘아시안 퍼시픽’ 소속의 개별 국가들이 국기를 게양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는 후문이 있었다. 독립 기념 퍼레이드를 제대로 준비하여 단독으로 출전하기 위해서는 수천 달러 이상의 경비가 thdyehlsmss ep, 올해는 이 경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공동으로 참여하였고 태극기도 들고 가지 못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JAL(Japan Airline)이름으로 매년 단독 참가하고 있어 1만 명 이상이 사는 한인사회가 타민족에게 약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7) 애틀랜타 한인회장 선거

애틀랜타 한인회장은 공식적으로는 선거에 의해 선축되지만, 실제상으로는 한인회장 후보가 단독으로 입후보하여 정기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복수 후보에 대한 투표 결과로 한인회장인 선출된 것은 애틀랜타 한인회 역사상 서너번에 불과하다. 1974년 말에는 이미 행하여진 한인회장 선거의 적법성을 놓고 논란이 일어났고, 결국 일시적으로 한인회가 와해되었다가 재건된 사례도 있었다. 1987년 말, 1997년 말, 2001년 말에는 한인회장 후보가 복수로 입후보 하였기 때문에 치열한 선거전을 통하여 한인회장이 선출되었다. 여기서는 1987년의 한인회장 선거만을 사례로 들어보겠다.

1987년 10월 25일 스톤마운틴 파크에서 개최한 한인회장 선거에 3명의 후보가 입후보하였다. 이것은 여태까지 애틀랜타 한인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례가 없는 열전 끝에 안수웅 씨가 한인회장에 당선되었다. 가장 먼저 등록을 한 후보는 안수웅 씨(당시 46세, 내과의사)로 9월 17일 등록을 마쳤으며, 두번째로 이재승 씨(당시 42세, 부동산업)가 9월 25일 등록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심중구 씨(당시 42세, 뉴욕임포트 대표)가 9월 29일 우편으로 등록을 마쳐 한인회장 입후보자는 3명이 되었다.

심중구 후보는 1)애틀랜타 한인사회의 각 단체 활성화, 2) 대외적으로 흑인 사회와의 마찰을 해소키 위해 흑인 단체를 돕는 일 추진, 3) 중국 교포 사회와 한인 교포 사회와의 자매결연을 맺는 일 추진, 4) 한인회 예산을 한인회 자체에서 해결하는 방향으로 추진 등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이재승 후보는 1)한인 사회의 신진파와 구진파의 화합 단결, 2) 소수민족과의 관계 증진, 3) 미국 사회에서의 위치 확보, 4) 한인 봉사 기관 및 미국 봉사 기관과의 유대 관계를 맺어 소수민족에게 부여된 자금 인출 등의 소견을 발표하였고, 고국의 발전에 따라 호흡을 같이 하겠다고 덧붙였다. 런닝메이트 부회장에는 엄한수씨가 입후보하였다.

또한 안수웅 후보는 1) 한인사회의 권익 신장과 단합 도모, 2)소수민족과의 유대 강화, 3) 연장자 보호, 4) 청소년의 동일 동질성을 심기 위한 노력 등을 제시하였다.

애틀랜타 한인회장 선거관리 위원회(위원장 박선근)는 1987년 10월 6일 오후 7시 코리아하우스에서 세 후보가 모인 가운데 기호 추첨을 하였다. 이 날 기호 1번에 심중구 후보, 기호 2번에 이재승 후보, 기호 3번에 안수웅 후보가 각각 추첨되었다. 한편 각 후보는 공명정대한 선거가 될 것을 결의하고 무조건 선거관리위원회 결정에 승복할 것을 다짐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한인회 이사회에서 제정한 선거 세칙을 후보, 참관인, 언론기관에 공포하였다. 선거는 선거인 명부에 등록이 된 자라야 투표할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유권자는 애틀랜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제시하여 대조 확인을 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을 하여야 하며, 한인회비를 납부한 가정의 18세 이상 성인에게만 선거권이 부여된다고 설명하였다.

애틀랜타 한인 프레스클럽(회장 김학규)은 1987년 10월 14일 오후 8시 에지몬트 호텔 회의실에서 애틀랜타 선거관리위원회 후원으로 1988~1989년도 애틀랜타 한인회장에 입후보한 세 후보의 소견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한국일보(지국장 김학규), 중앙일보(지국장 한영상), 세계일보(지사장 이준남) 등 언론사의 기자들 질문에, 한인회장 선거 투표권이 부여되는 한인회비 대납 문제에 대해 세 후보는 “회비를 대납하면서 타락선거를 하지 않겠다.”라고 공언을 하였다.

그러나 각 후보들은 한인회비 대납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해놓고 공공연하게 대납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많이 대납한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이러한 질문 이외에 기자들은 한인회장 임기 문제, 평통 자문위원 위촉 수락 여부 등을 질의하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한인들은 한인 봉사 센터와 한국 학교 지원 문제, 한인회관 건립 문제 등에 관해 세 후보들에게 질의하였다.

(8) 한국 국가대표 배구팀과 미국 국가대표 배구팀 경기에서 열띤 응원

1988년 7월 13일 오후 7시30분 한국 국가대표 배구팀과 미국 국가대표 배구팀과의 경기가 조지아 스테이트 대학 실내 체육관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배구대회에는 애틀랜타 한인회 안수웅 회장과 은용 부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전원과 이승남 이사장을 비롯한 다수 이사들이 약 2백명의 한인들과 함께 대형 태극기를 들고 열띤 응원을 벌였다. 특히 이국자씨(이재학 씨 부인; 현재 이 장의사 대표)는 한국말을 잘하는 고등학생 여자팀으로 구성된 응원단을 조직하여(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을 시킨 다음에) 악조건에서도 열띤 응원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날 한인들이 한국 배구팀을 위해 열성적인 응원을 하자 백인들도 질세라 USA를 구호로 외치는 소리가 구장을 떠나갈 듯 하였다. 이때 백인 응원석 중앙에는 애틀랜타 시장 앤드류 영(Andrew Young)이 앉아있었다. 앤드류 영 시장은 양 팀의 응원이 가열되는 가운데 한국일보 기자를 보고 자기는 중립적인 입장을 밝힌다는 듯이 빙긋이 웃으며 악수를 나누기도 하였다. 경기는 초반전에 한국 팀이 우세한 듯 하였으나 나중에는 체력과 팀워크가 딸려 3-0으로 패하고 말았다.